‘휴대전화로 복사’ ‘PC로 복사’ ‘액티브엑스 설치가 필요합니다'
공인인증서 사용자라면 대부분 이런 안내 메시지에 우왕좌왕했던 경험이 있다. 지난 1999년 탄생해 21년 넘게 이어져온 ‘공인인증서’ 체제가 오늘(9일)로 종료된다. 10일부터는 ‘공인인증서’에서 이름이 바뀐 ‘공동인증서’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밖에 다양한 기관과 업체에서 만든 편리한 ‘전자 인증 서비스’를 공인인증서 대신 사용할 수 있다.
통신사·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대형 IT 기업)들이 인지도와 기술력을 앞세워 인증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기존 공인인증서를 운영해온 금융결제원도 완전히 새로워진 인증서 서비스를 내놓고 경쟁에 나섰다.
◇금융인증서, 은행권 먼저 통용
공인인증서 시스템이 막을 내리지만, 당장 10일부터 공인인증서가 하던 역할을 민간 전자 인증서가 모두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사나 정부·공공 기관 등이 어떤 인증서를 사용할지 결정하고 이를 시스템에 반영하는 절차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가령 A 업체의 인증서를 가지고 있어도, 거래하는 기관에서 A 인증서를 인증 수단으로 채택하지 않았다면 사용이 불가능하다. 인증 서비스 업체가 개별 금융사 등과 손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인증 시장은 각개전투로 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은행권 공동 설립 기관인 금융결제원이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다. ‘금융인증서’라는 새로운 인증 서비스를 개발해 먼저 은행권과 두루 손잡은 것이다. 금융인증서는 10일부터 대부분 은행의 인터넷 뱅킹 메뉴에서 무료로 발급이 가능하고, 바로 인증서 사용도 가능하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그 밖에 카드사, 보험사 등 금융사와 다수의 정부·공공 기관(정부24, 홈택스, 국민신문고 등)에서도 12월 중 사용이 가능하도록 협의를 진행 중이다.
금융인증서는 공인인증서를 완전히 뜯어 고쳐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은행에서 이름·휴대전화 번호·생년월일 등을 입력하고 금융인증서를 한번 발급 받으면 자동으로 금융결제원 클라우드에 저장돼 언제 어디서든 사용이 가능하다. 기존 공인인증서의 경우 PC·휴대전화·USB 등에 저장해야 하기 때문에 기기를 휴대해야만 하고 분실의 위험이 있었는데, 이를 개선한 것이다. 또한 공인인증서는 10자 이상의 숫자·영문자·특수기호 등을 조합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지만, 금융인증서는 6자리 숫자 입력이나 지문·안면·패턴 인식 등을 통해 간편하게 인증이 가능하다.
◇”신뢰·보안 강점” 빅테크와 경쟁될까
공인인증서가 1년마다 갱신이 필요했던 것과 달리, 유효기간이 3년으로 길고 자동 갱신 서비스도 지원한다.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라 별도의 앱을 설치할 필요도 없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공인인증서가 가지고 있던 ‘페인(pain) 포인트(고객 불만)’를 해결하고 편리한 인증 서비스에 대한 수요에 부응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통신사 3사가 공동 운영하는 ‘패스’와 ‘카카오페이 인증서’ ‘토스 인증서’ 등 사설 인증서 누적 발급자가 각각 20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이미 사용층이 크게 확대해 향후 경쟁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관은 사용자가 많은 인증 서비스를 채택할 수밖에 없어 빅테크 인증서 사용처가 빠르게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공공 분야 전자 서명 확대를 위해 시범 사업자 후보로 패스와 카카오, NHN페이코, KB국민은행 등 민간 업체를 선정했고, 네이버, 카카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은 인증 서비스 본격 진출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에 본인확인기관 지정 심사도 신청했다.
다만 금융결제원은 “금융인증서는 은행에서 계좌 개설 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 고객을 대상으로 발급되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고, 수십 년의 인증 서비스 운영 노하우가 바탕이 돼 있다”며 “지속적인 혁신 노력으로 다양한 분야의 ‘통합 인증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