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이 내년 7월부터 바뀐다. 무사고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깎아주는 자동차 보험처럼 병원에 덜 갈수록 보험료가 내려가고 더 갈수록 올라가는 것이다. 도수 치료, 백내장 수술 같은 비급여 진료를 많이 받는 사람은 보험료가 최대 4배 뛴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4세대 실손보험’ 상품이 내년 7월부터 출시된다고 9일 밝혔다. 기존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기존 상품을 그대로 유지해도 되고, 새 상품으로 갈아타도 된다. 어떤 게 유리할까.

◇연간 비급여 300만원 이상 받으면 보험료 4배 뛴다

새 상품의 핵심은 비급여 보험료 차등제 도입이다. 기존 실손보험은 급여·비급여를 함께 보장받거나, 일부 비급여(도수·증식·체외충격파,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만 따로 떼어서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새로 나올 상품은 급여만 보장받을지, 아니면 급여와 비급여를 함께 보장받을지 소비자가 선택한다.

비급여 특약 보험료는 비급여 의료를 얼마나 이용하는지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비급여 보험금을 한 푼도 안 탄 가입자(전체의 73%로 추정)는 다음 해 보험료가 5% 할인된다. 비급여 이용량이 100만원 미만인 2단계 가입자(전체 25% 예상)는 할인·할증 없이 보험료가 유지된다.

그런데 비급여 보험금을 100만원 이상 받는 3~5단계 가입자는 보험료가 오른다. 받는 보험금이 100만~150만원이면 종전의 2배, 150만~300만원이면 3배, 300만원 이상이면 내야 할 보험료가 4배가 될 전망이다.

다만 실제 할인·할증은 통계가 확보된 이후부터 시행된다. 금융 당국은 출시 3년 이후부터 할인·할증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불가피하게 병원에 자주 갈 수밖에 없는 암 환자, 치매 환자 등에 대해선 할증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새 상품은 환자 자기부담금도 기존 상품보다 많아진다. 현재 실손보험에서는 급여 10~20%, 비급여 20%가 환자 본인 부담이지만, 새 상품에선 급여 20%, 비급여 30%를 자기 부담으로 내야 한다. 또 통원 치료 시 공제 금액도 올라간다. 지금은 외래 1만~2만원, 처방 8000원이다. 새 상품은 급여 1만원(단,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2만원), 비급여 3만원이 된다,

새 상품은 자기부담금이 올라가는 대신 보험료를 기존 상품보다 낮췄다. 지난 2009년 이전에 판매된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보다는 약 70%, 2009~2017년 표준화 실손보험보다는 약 50%, 2017년부터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신(新)실손보험보다는 약 10% 저렴해진다.

금융 당국은 “기존 상품의 높은 손해율을 감안할 때, 기존 상품과의 보험료 격차는 향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과잉 진료에 실손보험 적자 눈덩이

실손보험 대수술은 이번이 네 번째다. 3800만명이 가입한 ‘국민 보험’으로 자리 잡았지만, 초기에 자기부담금을 너무 낮게 잡는 등 후한 구조로 설계된 상품이 많이 팔려 보험사들로선 팔수록 손해나는 골칫거리가 됐다. 2017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쌓인 실손보험 적자액만 6조2000억원에 달한다.

가입자 중에는 1년에 비급여 진료만 3000번 넘게 받는 지나친 의료 쇼핑을 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가입자 셋 중 둘(65.7%)은 한 해 보험금을 한 푼도 안 받고, 병원 자주 가는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 절반 이상(56.8%)을 타가고 있다.

◇갈아탈까, 말까

내년 7월 이후 신규 가입자는 원하든 원치 않든 새 실손보험 상품만 가입할 수 있다. 다만 이미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기존 보험을 유지할지, 아니면 새 상품에 가입할지 선택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기존 실손보험 가입자가 원하는 경우, 새 상품으로 간편하게 전환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심사로 전환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 검토된다.

새 상품으로 갈아탈지는 본인이 평소 병원 이용 횟수가 잦은지 등을 따져서 선택해야 할 걸로 보인다. 새 상품은 보험료가 싼 대신 혜택도 그만큼 적다. 병원을 덜 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소비자라면 새 상품이 매력적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병원도 안 가는데 보험료가 계속 오른다’는 불만을 가졌던 소비자라면 전환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비급여 진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소비자라면 기존 상품이 유리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기존 상품 손해율이 높아지는 추세인 만큼, 앞으로 갱신 때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