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이어져온 ‘개미들의 12월 주식 대방출’이 올해는 달라질까? 국내 증시에선 매년 연말에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거 팔았다가 연초가 되면 다시 사들이는 양상이 되풀이됐다. 주된 원인으론 주식 양도소득세가 지목돼왔다.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이 연말이기 때문에, 투자액이 많은 ‘수퍼 개미’들이 대주주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연말에 주식을 내던진다는 것이다.

올해는 예전과 달리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을 사들이며 연말 증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부가 대주주 요건을 강화하려던 방침을 유예한 조치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증권가는 분석하고 있다.

/일러스트=김성규

◇개인 투자자, 13년 만에 연말 순매수 기록 쓰나

21일 한국거래소에서 따르면 이달 들어 코스피 지수는 7.2% 상승했다. 상승세를 이끈 것은 개인 투자자들로 이날까지 국내 코스피 시장에서 3조7086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같은 기간 각각 1조8152억원, 1조7677억원씩 순매도하며 차익 실현에 나선 것과는 정반대다. 앞으로 12월에 남은 거래일이 7일밖에 안 되기 때문에 개인의 순매수 기록은 연말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 투자자들이 12월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수를 기록한 것은 2007년(1684억원)이 마지막이다. 이후 12년간 개인은 한해도 빠짐없이 연말이면 어김없이 주식을 팔아치웠다. 대주주 판단 기준일이 연말이기 때문에 양도세를 피하려는 투자자들이 연말 직전에 주식을 대거 매도했기 때문이다. 최근 3년 동안 개인이 유가증권 시장에서 순매도한 주식은 2017년 3조6645억원, 2018년 1조2339억원, 2019년 3조8275억원에 달했다.

◇‘대주주 3억원’ 요건 강화 무산, 매도세 진정시켜

개인 투자자의 연말 순매수 현상을 두고 증권가에서는 ‘정부가 추진했던 대주주 요건 강화 방침이 무산된 것이 효과를 본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초 기획재정부는 대주주 요건을 ‘한 종목당 보유액 10억원’에서 내년부터 3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고수해왔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특정 주식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주주 수는 1만2639명(보유 금액 199조9582억원)이고, 3억원 이상~10억원 미만 보유 주주 수는 8만861명(보유 금액 41조5833억원)이다. 대주주 요건이 3억원으로 낮춰질 경우 8만861명이 새로운 과세 대상에 포함될 뻔했던 것이다.

시장에서는 정부 방침대로 대주주 요건이 강화된다면 올 연말 국내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최대 10조원 규모의 ‘매도 폭탄’을 쏟아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기획재정부는 대주주 범위를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 등을 포함한 ‘가족합산’에서 ‘개인별’로 바꾸겠다고 한발 물러섰으나, 여당이 기재부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결국 현행대로 ‘가족 합산 10억원’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주주 요건 강화 방침이 무산되면서 연말 개인 투자자의 매도세 진정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대주주 요건은 기존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최근 주식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오히려 개인의 매수세가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피 3000’ 전망 속속 등장에 ‘사자’ 행렬 이어져

‘내년도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돌파한다’는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개인 순매수세의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증시는 지난달 들어 달러 약세(원화 강세)로 인한 외국인 투자금 유입, 반도체와 2차전지 업종에 대한 기대감, 미국 대선 종료로 인한 불확실성 해소 등 호재가 쏟아지며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11월 한 달간 코스피 지수는 무려 16.1% 올라 코로나로 인한 폭락장(2~3월) 이후 증시가 급반등했던 4월(10.9%)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며 증권사들은 최근 내년 코스피 지수 전망치를 3000 이상으로 줄줄이 수정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10월 말 내년 코스피 예상 등락 범위를 2100~2700으로 전망했지만, 지난 7일 최고점을 3150~3200으로 올려잡았다. 한화투자증권은 내년 코스피 상단을 2700에서 3000으로 수정했고, 하이투자증권 역시 지난달 중순 코스피 상단을 2760으로 제시했다가 지난 11일 3000으로 수정했다.

윤창용 신한금투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의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갈 곳을 못 찾은 투자금이 많은 데다, ‘주식시장이 내년에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증시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 계좌에서 대기하고 있는 ‘투자자 예탁금’은 11월 초 53조3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 17일에는 61조5000억원으로 8조원 넘게 늘었다. 빚을 내 주식을 산 ‘빚투’ 규모도 같은 기간 16조6000억원에서 19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황세운 위원은 “개인의 순매수세는 최소 내년 초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