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장중에 연구소 시선을 끈 1조짜리 초대형 공급계약 공시가 나왔다.
‘엘아이에스’라는 코스닥 상장사가 9820억원 어치 마스크(KF94)를 태국의 더블에이(Double A) 그룹에 수출한다는 내용이었다. 더블에이 그룹은 우리가 많이 쓰는 복사용지 더블에이, 바로 그 그룹이다.
요즘 생산이 늘어서 마스크 도매가격이 한 장에 300원쯤 한다는데, 982억원도 아니고 9820억원 어치 태국으로 수출한다니, 단순 계산하면 태국으로 마스크를 약 33억장 팔았다는 계산이 나온다(참고로 태국 인구는 7000만명 정도다).
공시가 사실이라면, 시가총액 1270억원인 중소기업이 본업도 아닌 부업으로 1조원 어치 수출 쾌거를 거둔 셈이다.
당연히 공시가 나오자마자 엘아이에스 주가는 급등했고 거래량은 폭발했다. 주가는 공시 전날부터 이미 꿈틀거렸다.
하루 전인 15일부터 주가는 상한가를 찍으며 1만450원에 마감했고, 공시 당일인 16일에는 장중 1만3550원까지 오르면서 52주 최고가를 찍었다.
엘아이에스는 원래 디스플레이 장비업체인데, 이 회사는 공시에서 마스크 판매로 사업다각화를 꾀한다고 하면서 “대다수 마스크 생산업체들이 커져가는 시장 수요에 대응하지 못해 대량 생산을 못하고 있다, 당사는 대량의 장비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고 높은 기술력을 가진 인력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엘아이에스의 최대주주를 살펴보니 ‘야웨이정밀레이저코리아'라는 낯선 곳이다. 지난해 9월 최대주주가 이곳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해당 회사는 ‘장쑤야웨이정밀격광과기유한공사'라는 중국 기업의 자회사다. 쉽게 말하면, 엘아이에스의 오너는 중국 회사인 셈이다.
1조 마스크 수출 계약 공시 이후, 엘아이에스의 매매 현황을 살펴보니 유독 기타법인의 매도세가 거셌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기타법인은 이달 들어서만 74억원 넘게 엘아이에스 주식을 팔아 치웠다. 지난 1월부터 많아봤자 4억원 수준이었던 기타법인의 순매도액이 이달 갑자기 18배 급증한 것이다.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기타법인은 일반 상장법인이나 투자조합 등을 일컫는다. 기법이 1조 수출 공시 전후로 내던진 주식은 전부 개미들이 받았다. 엘아이에스는 월 평균 개인 투자자들의 순매수액이 많아봤자 7억원 정도였는데, 이달에는 ‘1조 수출 버프'로 79억원을 넘었다.
그런데 지난 22일 1조원 어치 마스크를 사가는 것으로 알려졌던 더블에이 그룹의 한국 지사가 뜻밖의 공지를 내놨다. ‘엘아이에스와 마스크 공급 계약을 체결한 적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1조짜리 마스크 수출의 계약 상대방이 강력 부인했다는 소식에 엘아이에스는 23일 오전 개장하자마자 주가가 급락했다. 이날 오전에만 26% 하락하면서 7960원으로 빠졌는데, 한국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바로 해당 주식의 거래를 정지시켰다.
엘아이에스 측은 23일 오전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단 엘아이에스의 주식 거래는 거래소가 요구한 ‘단일판매 공급계약 공시의 허위 여부 및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조회공시 답변이 회사 측에서 나올 때까지 중단된다. 답변 시한은 오는 24일 저녁 6시까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마침 23일이 해당 수주의 계약금(약 490억원) 입금 시한이라고 하니까 이를 근거로 해서 계약의 허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시만 믿기보다는 전후 사정을 다 살펴보고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