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거래일부터 코스피가 2900 선을 뛰어넘으면서 3000 선 돌파를 눈 앞에 두게 됐다. 코스피가 2944.45를 찍으며 역대 최고치로 마감한 4일, 여의도 증권가에는 “지금도 늦지 않았느냐”는 투자자들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편득현 NH투자증권 부부장은 “작년 3월엔 코로나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나타날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에 무차별적인 주식 투매 현상이 나타났는데, 지금의 투자 심리는 정반대”라며 “새해 벽두부터 주식을 사겠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개인들은 코스피와 코스닥 두 시장에서 1조4000억원 넘게 주식을 순매수하며 ‘코스피 3000, 코스닥 1000′ 시대 진입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국민 5명 중 1명꼴 동학개미
엄청난 속도로 주가를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은 1000만명으로 추정되는 개인 투자자다. 저금리와 부동산 규제 강화 등으로 부동 자금이 늘어난 가운데 개인들이 강력한 매수세를 형성하면서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증시를 주도해왔던 외국인이나 기관에 맞서는 모습이 조선 말기 빈약한 무기로 외세에 대항했던 동학농민운동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동학 개미’로 불린다.
지난해 말부터는 초호황 주식 열차가 자기만 태워주지 않고 떠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주식 투자층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직장인, 주부에서 거액 자산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자산 시장에 ‘낙오 공포증’이 번지는 현상이 최근 급격한 주가 상승의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포비아(공포증)는 상승장에서 나홀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뜻한다. “나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증권사 HTS 먹통
포모 포비아는 친구, 직장 동료, 소셜미디어 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인터넷 주식 커뮤니티에는 “올해 100% 수익률 올렸어요” “한 달 월급보다 수익이 더 많아요”라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이런 글들은 계좌 사진도 첨부해 ‘계좌 인증글’이라고 불린다.
이런 글에 자극받은 주식 초보들의 매수세가 급증하면서 4일 오전 NH투자증권과 KB증권 등 일부 증권사의 주식 거래 시스템(HTS, MTS)에 장애가 생기기도 했다. 주식 초보들은 이날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주식인 삼성전자(우선주 포함)를 8000억원 넘게 집중 매수했다.
김기주 KPI투자자문 대표는 지난 3일 수백억 자산가인 P 회장의 호출을 받고 창원까지 왕복 10시간을 운전해 다녀왔다. 실물 경제는 좋지 않은데 주가만 치솟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주식을 사도 되는 건지, 2시간 동안 질문이 이어졌다. 김 대표는 “주식 상승을 지켜보던 부자들이 본인들의 자산 가치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부동산 규제가 강해지면서 결국 주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목대균 K글로벌파트너스 대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제로(0) 금리 유지 등 완화적인 통화 정책에 힘입어 올해 국내 증시 전망도 긍정적”이라며 “주식이 일반적으로 경제를 약 6~8개월 선행하는 지표임을 감안한다면 백신 배포 후 경제 활동 정상화 기대감도 높다”고 말했다.
◇과열 지표인 버핏 지수 사상 최고
올해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작년보다 좋아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가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증시 과열을 판단하는 지표인 ‘버핏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버핏 지수란,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 총액을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인데 지난해 123.4%까지 올랐다. 이 지수가 80% 아래면 저평가, 100%를 넘으면 고평가된 것으로 본다.
지난해 증시 호황으로 국내 증시 시가총액은 2366조원까지 커졌지만, 코로나 사태 여파로 명목 GDP는 0.1% 감소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19년 89.5% 수준이었던 버핏 지수가 단번에 120% 넘는 수준으로 크게 증가한 것이다. 국내 증시의 버핏 지수는 코스피가 처음으로 2000 선을 넘었던 2007년에 96.5%까지 올랐었고, 2017년 102.9%로 처음 100%를 넘어선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