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급하게 1500만원이 필요했던 A씨는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대출 상담사를 찾았다. 신용 등급이 낮아 시중은행에선 더 이상 대출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A씨에게 ‘중고차 대환 대출’을 안내해줬다. 중고차를 구매해 열흘 정도 이용하면, 그 차를 담보로 은행에서 낮은 금리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귀가 솔깃해진 A씨에게 상담사는 중고차 딜러를 소개해줬고, A씨는 딜러에게서 중고 외제차를 2000만원 주고 샀다. 구입 대금은 캐피털사에서 19.5% 이자로 빌렸는데, ‘열흘 정도 이자만 내면 부담없겠지’란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A씨는 열흘 뒤 은행을 찾았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담사의 호언장담과 달리 은행에서 대출이 거절된 것이다. 대환 대출을 소개해 준 상담사는 연락이 두절됐고, 차를 판 딜러에게 차를 다시 가져가라고 했지만 이 딜러는 1200만원밖에 주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결국 A씨는 지인에게 1400만원에 차를 팔아야만 했다.

최근 잇따라 법정 최고금리가 떨어지면서 대부업체에서조차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고차 시장에서 신종 사기 기법이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씨가 당한 ‘중고차 대환 대출’ 사기뿐 아니라 최근엔 ‘중고차 입고 대출’이라는 사기 기법까지 등장했다. 이는 중고차를 사금융업자에게 맡기고 돈을 빌린 뒤, 다시 차를 받으러 가면 보관 비용과 수리비 명목으로 수백만원가량을 청구하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관 비용 명목으로 돈을 받아가면 법정 최고금리 위반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며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리는 저신용자가 많아질수록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 피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리 사각지대 놓인 중고차 시세… 정부 사이트조차 제각각

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2019년 중고차 판매 대수는 224만대로 신차 판매량(178만대)의 1.3배가량이었다. 중고차 판매 대수는 2015년(253만대)에 비해 오히려 줄었지만 2018년까진 250만~260만대 수준을 유지했다. 카드사와 캐피털사 등 여러 업권이 경쟁하는 신차 금융 시장과는 달리 중고차 금융 시장은 캐피털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는 기본적으로 중고차 매매 단지를 기반으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금융사와 중고차 딜러 간 관계가 중요하다”며 “오랫동안 관계를 쌓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은행 등 다른 업권 금융사들이 진출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리스, 할부, 구매 대금 대출 등 캐피털사들이 취급하는 중고차 금융 규모는 2019년 12조8000억원으로 4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고차 판매 대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규모만 늘어나는 현상은 그만큼 중고차를 기반으로 한 금융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고차 금융은 기본적으로 금융회사들이 중고차 딜러를 거쳐 소비자들에게 돈을 대주는 구조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환 대출이나 입고 대출처럼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불법 사금융업자들까지 개입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고차 금융시장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고차 시장은 원래 국토교통부 소관이지만 그 역할을 지자체로 떠넘기고 있고, 불법 사금융은 금융 당국 소관으로 나뉘어 있다.

중고차 시세가 일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중고차 금융이 투명화되려면 담보 가치의 기준이 되는 시세가 실제 가치를 반영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중고차 시세 사이트 ‘자동차365’에서조차 정확한 시세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사이트는 케이카(K Car), KB차차차, 현대캐피탈 등 국내 중고차 매매 사이트 6곳에서 제공하는 시세를 한번에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2018년식 기아 K9을 조회하면 3394만원(현대캐피탈)에서 4771만원(KB차차차)까지 1377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각 사이트엔 허위 및 미끼 매물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세마저도 대체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중고차의 담보 가치는 실제 구입 비용의 10% 수준으로밖에 책정이 안 되기 때문에 금융사 입장에선 낮은 금리로 정상적으로 대출을 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올해 하반기 법정 최고금리 20%로 인하…저신용자 중고차 대출 피해 급증 불가피

최근 들어 중고차 금융시장에서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또 다른 원인은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리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대부 업체에서 대출이 거절돼 불법 사채 시장으로 쫓겨난 저신용자들은 19만명에 이른다. 2016년 3월 법정 최고금리가 34.9%에서 27.9%로 떨어졌고, 2018년 2월엔 다시 24%로 떨어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역시 대부 업체 이용자는 157만5000명으로 재작년 하반기 177만7000명보다 11.4%(20만2000명)나 줄었다. 이 중 일부는 정책 서민금융 상품이 흡수했지만, 상당 인원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서민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최고금리가 20%까지 떨어지면 대출을 받지 못하는 저신용자들이 57만명이나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결국 저신용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