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적용됐던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 기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해 원금과 이자 상환 유예를 모두 연장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현장에서 기업들을 직접 상대한 은행권이나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무차별적인 지원으로 부실을 더 키우기보다 이제부터라도 옥석을 가리는 선별 지원을 통해 부실 줄이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옥석 가리기의 핵심은 대출금 원금의 만기는 연장해주더라도 이자는 갚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자도 못 갚을 상황에 처한 기업은 나중에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에도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다.
◇원금과 이자 상환 모두 재연장에 무게 두는 금융 당국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과 은행권은 오는 3월 31일 종료되는 ‘대출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프로그램’의 연장 여부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작년 4월부터 6개월간 이 프로그램을 시행했고, 작년 하반기에 코로나가 재확산하자 기한을 올해 3월 말까지 6개월 더 연장했다.
아직 구체적인 방침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금융 당국은 원금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 등 두 가지 조치를 모두 재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영업 환경이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지 지켜보며 2월 말쯤 연장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에 따르면, 코로나 때문에 만기가 연장된 대출금은 작년 11월까지 109조원가량 된다. 전체 은행권 기업 대출금(3분기 말 1009조원)의 10%가량으로 절대적으로 큰 규모는 아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당수의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이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다”며 “원리금 상환을 늦추는 고객은 상대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연장 여부의 쟁점은 이자 상환 유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11월까지 은행권이 유예해준 이자는 950억원이다. 12월 말엔 1020억원으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코로나 대출 금리가 연 2~3% 수준임을 고려하면 대출 원금은 약 4조~5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금융위 측은 이자 상환 유예 규모가 크지 않아 금융권 부담이 크지 않고, 유예 기간이 끝난 후 금융사와 채무자가 협의해 납부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존처럼 원금 만기 연장과 함께 이자 상환 유예도 동시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전문가들 “대출 만기 연장해도 이자는 갚도록 해야”
그러나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자 상환 유예는 별도 조치로 떼어놓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달 이자도 내지 못할 정도라면 영업 환경이 개선된다 해도 수익성이 개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선 유예된 이자 원금에서 최대 50%가량은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재무 담당 부행장은 “정부가 보증을 해주기로 했으니 사실 개별 금융사 입장에선 더 연장을 하더라도 건전성엔 큰 문제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언젠가 연장 조치가 끝났을 때 자영업자들이 그동안 안 갚은 이자까지 갚느라 이자 부담이 2배 이상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씩이라도 이자를 갚아나가게 해야 나중에 이자 상환 부담이 급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작년엔 옥석을 가릴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모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일괄 지원해줬지만 이젠 선별적인 지원을 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며 “코로나가 끝난 후 회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만 상환 유예를 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자 부분 상환을 조건으로 연장을 해주거나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채무 재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작년부터 시행된 각종 유동성 공급 정책들도 하나씩 순차적으로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