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소득에서 빚을 갚는 데 쓰는 돈의 비율이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만큼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증가하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빨라졌다. 부동산 값 급등으로 가계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데다 작년부터는 주가 상승으로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도 이 같은 가계 대출 증가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2일 BIS(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작년 2분기 기준 가계 부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12.6%로 집계됐다. DSR은 연소득 대비 한 해에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 가계가 1년에 번 돈이 1000만원이라면 이 중 126만원을 빚 갚는 데 쓴다는 의미다. 한국의 DSR은 2017년 4분기부터 거의 매 분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DSR 증가 속도는 현 정부 들어 가속됐다. 2017년 3월 11.4%였던 DSR은 작년 2분기까지 2년여 만에 1.2%포인트 증가했다. BIS가 가계 부문 DSR을 집계하는 17국 가운데 같은 기간에 1%포인트 넘게 늘어난 곳은 한국과 노르웨이(1.1%포인트)뿐이었다. 미국⋅캐나다⋅영국⋅독일 등 10국은 오히려 감소했다. 가계 부채 급등세가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작년 2분기 한국의 DSR(12.6%)은 17국 중 5위였다. 2017년부터 2020년 1분기까지는 6위였는데, 순위가 오른 것이다. 한국 DSR이 5위가 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침체됐던 부동산 시장이 급등세를 보였던 2002년 이후 18년 만이다.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 노르웨이(15.9%), 네덜란드(14.8%), 호주(14.2%), 덴마크(13.9%)는 모두 DSR이 떨어지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만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 당국도 분주해졌다. 금융위원회는 12일 ‘금융 리스크 대응반 회의’를 열어 은행권에 가계 대출 관리 강화를 당부했다.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급증했던 고액 신용대출, 특히 긴급생활·사업자금으로 보기 어려운 자금 대출에 대해 특별히 관리를 해달라”며 “(금융 당국도) 신용대출 자금의 특정 자산시장 쏠림 여부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신용대출 증가세 관리에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전날 은행 17곳의 여신 담당 임원들을 긴급 소집해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은 각 은행이 제출한 월별 가계대출 목표치를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연초에 보통 신용대출 잔액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 신용대출 증가세는 우려스럽다”며 “빚을 내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전했다.
가계 부채 증가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금융 당국 주도의 각 은행 가계 대출 목표치 하향 조정에 이어 추가적인 대출 규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현재 담보를 기준으로 하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 위주 대출 규제에 상환 능력을 중시하는 DSR 규제까지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실제로 작년 연말 윤석헌 금감원장은 “(DSR 규제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돈을 빌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고,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윤 원장은 “당장 DSR 규제를 도입해 옥죄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조화롭게 고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