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연팔(연기금이 팔다)인가요?”
4일 코스피가 전날보다 1.3% 하락한 3043.49에 마감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연기금의 순매도 행진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올해 3000시대를 연 코스피의 변동성이 최근 극심해진 가운데, 국내 증시의 큰손인 연기금이 역대급 매도를 이어가는 데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은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이날까지 사상 최장인 45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다. 금액은 약 14조원. 종전 최장 기록은 2009년 8월 3일부터 9월 9일까지 28거래일로 약 3조원이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이날 오전 전주 국민연금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작년 말부터 역대급 매도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연금 가입자들 “내가 낸 돈이 독화살 됐다”
연기금은 자산 배분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내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연기금의 큰형 격인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 2018년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5개년 중기 자산 배분 계획에 따라 국내 주식 비율을 연말까지 16.8%로 줄여야 한다.
지난해 목표치는 17.3%였는데 실제 연말 비율은 21.2%로 3.9%포인트 초과됐다.
하지만 코스피가 박스권에서 움직이던 이른바 박스피 시절에 세운 자산 배분 계획을 3000을 뚫은 삼천피 시대에 경직적으로 유지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장은 “국민연금이 16.8%란 목표에 얽매여 연말까지 20조원 이상 기계적 매도를 이어가겠다는 건 지수 상승을 주도해 온 개인 투자자들에 대한 명백한 이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주식 투자자 이모씨는 “내가 낸 연금이 독화살이 되어 돌아왔다”면서 “연기금의 단순한 기준 끼워맞추기식 기계적 매매가 코스피를 또다시 박스권에 가둬두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고위 임원도 “연기금은 자산 배분 원칙에 따라 주식을 사고 판다고 하지만, 시장 입장에서는 연기금이 국내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해 주는 모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연기금의 주식 매도를 동학 개미들의 여론전에 밀려 양보하게 된다면 당장 코스피 수급은 좋아질지 몰라도 결국엔 미래의 연금엔 독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금융사 대표 A씨는 “국민연금은 어항 속 고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주식에만 있기엔 덩치가 커졌다”면서 “향후 연금을 지급해야 할 시기에 대비하는 출구 전략을 고민한다면 지금 국내 대형주 비중을 줄이는 것은 적절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연기금 주식 매도 논란
올해 주가가 30년래 최고치를 찍은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연기금 매도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3일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전 세계 최대 규모인 1900조원을 굴리는 일본 공적연금(GPIF)은 일본 주식 비율을 대략 25% 수준에 맞춰 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말 기준 24.06%였던 GPIF의 일본주 비율은 올 초 증시 급등으로 26%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다이와증권은 GPIF의 자산 배분 계획을 토대로 앞으로도 약 1조엔(약 10조5000억원) 이상 매도가 나올 여지가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에선 국민연금이 연말까지 보유 중인 국내 주식을 21조원어치 더 팔아치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연금 측은 “자산 가격이 비쌀 때 팔고, 가격이 떨어진 자산을 사들이는 ‘리밸런싱’이 장기적인 수익률에는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연기금 매도세와 관련한 논란이 거세지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리밸런싱(자산 배분) 문제를 기금운용 본부에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국내 주식 허용 한도(목표 비율을 초과해도 자산을 팔지 않는 한도)가 5%포인트 정도인데, 이를 더 높일 수 있을지 검토한다. 만약 이 한도가 높아지면 국민연금 매도세가 지금보다는 다소 수그러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