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사이언스의 일반공모주 청약 마지막날인 10일 오전 NH투자증권 명동WM센터에서 투자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뉴시스

240만개의 계좌에서 약 64조원이 몰려 신기록을 세운 SK바이오사이언스 공모주 청약에서 28만명은 단 1주도 배정받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11일 이 같은 공모주 배정 결과가 발표되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희비가 엇갈렸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금융 당국이 1주씩은 배정받도록 해준다고 했는데 ‘영(0)주 대란’이 터졌다”는 말이 나왔다.

11일 증권 업계에 따르면, SK바이오사이언스 청약을 주관한 증권사 6곳 중에서 삼성증권과 하나금융투자에 공모주 청약을 신청했던 22만4000명과 5만7000명이 추첨에 떨어지면서 단 1주도 받지 못했다.

이번 공모주 청약에 처음으로 ‘균등 배정 방식’이 적용되면서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균등 배정은 공모주 전체 물량의 절반은 최소 청약 기준(10주)을 넘긴 청약자들이 동등하게 나눠 갖도록 하는 방식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적어도 1주는 배정을 받도록 하겠다고 정부가 마련한 제도다. 소액 투자자들이 돈(청약 증거금)의 힘에 밀려 공모주를 1주도 못 받는 사태를 막겠다며 올해부터 도입했다. 하지만 청약자가 많아서 배정할 공모주를 웃도는 경우엔 추첨으로 정하기로 했다.

대형 공모주의 경우 ‘따상(상장 첫날 공모가 2배 이후 상한가)’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청약이 몰리는데 이번 SK바이오사이언스의 경우는 증거금이 지난해 카카오게임즈(58조원)를 넘어 63조6000억원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코로나 백신 제조 기업이라 시장의 기대감이 커서 인기가 뜨거웠다.

균등 배정 방식을 도입하면서 복수 청약을 막지 않은 금융 당국이 ‘영주 대란’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균등 배정과 중복 청약의 허점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증권사 업무는 마비됐다. NH투자증권의 경우, 지난 3월 초까지 개설된 신규 계좌 수가 82만개로, 작년 전체 신규 계좌 수(161만개)의 절반이 넘었다. 증권사 직원 A씨는 “증권사 계좌는 작성해야 할 서류가 많아서 신규 개설에 1시간씩 걸리는데 계좌를 여러 개 만들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 최근 1주일은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형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임원은 “정부가 세입자를 보호한다고 전·월세 대책을 내놓는 바람에 매물이 사라져 오히려 호가만 급등했던 전례가 있다”면서 “이번 공모주 제도 개편에서도 그럴 듯한 화두만 던져 놓고 각론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어설픈 의사 결정 때문에 혼란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회사원 이모씨는 “작년 빅히트 공모주 청약을 처음 해봤지만 소액이라서 1주도 받지 못했다”면서 “올해는 소액을 넣어도 무조건 1주씩은 받을 수 있게 했다는 정부 발표를 믿고 들어갔는데, 1주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상장 기업 입장에서도 소액 투자자들의 대거 참여가 썩 반갑지 않다. 기업의 성장을 믿고 우직하게 기다리는 돈이 아니라, 깃털처럼 가벼운 단기 투자 자금이 많기 때문이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대어급 공모주 청약은 거액 자산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청약이 끝난 후 자금이 빠지지 말라고 특판 행사를 많이 한다”면서 “하지만 올해는 소액으로 단기 투자하는 자금이 많아서 프로모션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전체 공모주 물량의 50%는 균등 배정을 해야 한다고 금융위가 정했는데 당초 50%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온 건지 묻고 싶다”면서 “시장 현실을 전혀 모르고 책상에 앉아서 만드니 허점투성이 정책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를 정교하게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경쟁만 부추기는 바람에 영(0)주 대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균등 배정 제도 도입과 동시에 증권사별 중복 청약도 막겠다고 했지만, 시스템 마련 미비를 이유로 사실상 이를 묵인했다.

투자자 김모씨는 “소액 투자자도 공모주 이익을 누려야 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차명 계좌를 대거 동원하는 등 편법을 쓰는 사람을 막는 디테일에 더 신경 써야 했다”고 말했다.

영(0)주 대란이 벌어진 11일 금융위원회는 여러 증권사를 통한 공모주 중복 청약을 이르면 5월 하순부터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대형 증권사 고위 임원은 “금융 당국이 의지만 있다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차명 계좌를 동원한 중복 청약을 단속할 수 있었는데 SK바이오사이언스 공모에서는 뒷짐을 지고 있다 일이 터진 뒤에야 나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