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국내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가격이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 차익(差益)거래를 하는 것을 금융·외환 당국이 막을 수단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인 등이 우리나라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현금화한 다음 해외로 쪼개기 송금하는 것을 막을 수단이 없다. 가상화폐 차익거래의 경우 불법은 아니지만, 자금 세탁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16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관세청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가상화폐를 국내에서 매각한 돈을 해외로 송금할 때 한 건당 5000달러(1인당 연간 5만 달러) 이내로만 송금하면 별다른 제한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 “건당 5000달러 미만 송금은 은행이 자체 규정으로…”

기획재정부는 “외국인 거주자는 자금 취득경위 입증서류가 없을 경우 은행을 통해 연간 미화 5만달러까지만 송금이 가능하다”며 “건당 5000달러 초과 시에는 은행이 법령상 확인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5000달러 이하의 송금에 대해서는 “은행의 자체 준법감시규정에 따라 확인 처리해야 한다”며 “가상자산 매매를 위해 쪼개기 송금이 이뤄질 경우 은행이 자체 준법 감시 규정에 따라 거래를 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추경호 의원은 “결국 은행이 알아서 송금해줄지 말지 결정하라는 것인데, 외환 당국이 금융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평소 은행 거래가 별로 없던 중국인들이 현금 다발을 가져와 해외 송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시중 4대 은행과 농협에서는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해외 송금액은 7억2940만달러이고 이 중 중국으로 송금된 돈이 1억1030만달러로 15%를 차지했다. 특히 이번 달 9일간 중국으로 송금된 금액이 지난 한 달 송금액(1억720만달러)을 넘어선 것이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차익거래가 이뤄지면서 중국인 등 외국인 송금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거래소에 비해 국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이 10% 이상 비싼 가격에 거래되자 외국인들이 해외에서 구입한 가상화폐를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과거 2018년 1월에는 김치 프리미엄이 최대 47% 수준까지 높아진 경우도 있었다. 현재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정부는 가상화폐를 가상자산으로 표현)은 금융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정부가 가상화폐를 금융으로 인정할 경우 투기가 이뤄지면서 김치 프리미엄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 “외국 송금은 기재부 소관”

관세청의 가상화폐 관련 단속은 주로 내국인과 우리나라 기업의 불법 행위를 막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세청은 주로 국내 업체 등이 가상화폐를 이용해 해외로 불법 송금을 하거나, 우리나라 사람이 ‘여행자금’이라고 속이고 달러 등을 해외로 가져가 해외에서 비트코인을 사는 행위 등을 제한하고 있다. 관세청은 “가상자산을 이용한 신종 환치기 수법 및 가상자산이 불법 수출입 물품 거래자금의 통로로 사용되는 등 위법행위에 대해 단속 추진 중”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비트코인을 구입한 다음 해외 업체로 전송하고, 해외 업체가 현지에서 돈을 받을 사람에게 현지통화를 지급하는 등의 불법 송금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행자금이라고 속이고 달러 등 외화를 외국에 가져가서 가상화폐를 구입하는 사람들 역시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가상화폐를 국내에서 현금화해 쪼개기 송금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세청 소관 사항이 아니다”라고 했다. 금융위원회도 “불법 환치기 및 쪼개기 송금 문제는 외국환거래법과 관련된 사항으로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소관”이라고 했다.

금융위는 “지난 3월 25일부터 특정금융정보법 제7조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는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해야 한다”며 “신고접수 및 수리가 완료된 이후 의심거래보고의무, 고객현금거래보고의무 등을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9월 24일까지는 신고접수가 진행되는 기간인데, 신고 접수 및 수리 이전에는 정부가 거래 내역을 명확하게 확인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추경호 의원은 “지난달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으로 가상자산 사업자들의 자금세탁 방지 의무가 생겼지만 6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공백이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