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실패로 3년간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작년 1월 빚을 청산한 박모(52)씨는 가장 먼저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대형 마트나 가전 대리점에서 권유받아 한 장, 두 장 만들다 보니 어느덧 지갑 속 신용카드가 5장으로 불어났다. 은행 대출보다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카드론으로 500만원을 빌렸다. 대부 업체 대출까지 포함하니 박씨의 빚은 1년도 안 돼 1000만원이 넘었다. 식당에서 고기 손질 일을 하면서 받는 월급 180만원으로는 갚기 힘들어졌다. 박씨는 “빚이 자꾸 불어나니 개인회생에 들어갔던 악몽이 떠올라 밤에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다. 카드론은 은행 대출보다 문턱이 낮고,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어서 언제든지 필요할 때 빌렸다가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 소상공인이나 저신용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1억장 넘게 발급된 신용카드

한국은행이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신용카드 발급 장수는 누적 기준으로 1억1370만장이었다. 전년(1억1100만장)보다 2.4%(270만장) 늘었다. 2000년대 초반 1억장이 넘었지만. 금융 당국 규제로 2014~2017년 4년간 9000만장대로 떨어졌는데 2018년부터 다시 1억장을 넘어서면서 늘어나는 추세다.

카드 회사들은 카드 종류를 늘리는 등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지난해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 7곳이 새로 출시한 신용카드는 144종으로 전년(61종)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이 페이 등으로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존 카드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신용 등급 1~6등급 위주로 발급됐던 신용카드는 최근 7등급 이하 저신용자들에게도 발급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적용되는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도 카드 회사들의 경우는 내년 7월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카드론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악성 부채 3년 새 2배로 급증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신용카드발 금융 부실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가계 부채가 1600조원에 달하면서 금융 당국이 은행 등 1금융권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이 같은 위험은 더 커지고 있는 중이다. 카드론을 포함한 카드 회사의 연체액(1개월 이상)은 겉으로는 최근 3년간 1조3000억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곯아 들어가고 있다. 6개월 이상 연체 악성 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2017년 764억원에서 2020년 1684억원이 돼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연체 채권 중 악성 채권 비율은 같은 기간 6.5%에서 12.8%로 역시 2배로 늘었다. 이는 카드 사태 직전 2002년과 같은 숫자다. 채권 규모는 그 당시보다 적긴 하지만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2년에도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수익률이 줄자 카드회사들이 회원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악성 채권 비율이 22.7%까지 치솟은 적이 있지만, 금융 당국이 카드 발급 기준과 카드론 심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이듬해 9.9%까지 떨어졌다. 2014년에도 14.5%까지 오른 적이 있지만, 2017년(6.5%)까지는 감소세가 이어졌다.

◇취약 경제층에서 카드론 급증

카드론 증가율을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다른 연령대보다 경제력이 취약한 20대와 60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2018년 8930억원에서 2020년 1조1410억원으로, 60대는 3조5660억원에서 5조1290억원으로 급증했다. 전체 카드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대가 2018년 3.3%에서 지난해 3.6%로, 60대는 같은 기간 13.4%에서 16%로 커졌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을 갖춘 30~40대는 비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카드론과 같은 제2금융권 신용 대출은 작은 충격에도 연쇄적인 금융 부실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며 “카드론 이용자 중 돌려막기를 하는 다중 채무자도 많기 때문에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