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유한양행은 장장 67년간 연속 흑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6·25를 제외하고는 적자를 낸 적이 없다”는 회사다. 2014년 제약 업계에서는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19일 본지가 한국상장사협의회 자료를 토대로 국내 상장 기업 2303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유한양행을 비롯해 58곳이 30년 이상 흑자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6곳은 50년 이상 연속 흑자를 내고 있었다. 유한양행 67년, 한독 64년, 보령제약 57년, 삼천리 55년, 신영증권과 삼성물산 50년이다.

박진환 파인만자산운용 부사장은 “흑자 장수 기업들은 명성과 몸집보다는 평판이 좋으면서 견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보유한 곳”이라며 “낮은 부채 비율 등 재무 구조가 안정적이어서 위기가 닥쳐도 오히려 재도약하면서 기업을 일궈왔다”고 평가했다.

유한양행/조선일보DB

◇30년 연속 흑자 기업, 전체의 2.5%

30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58개 기업은 전체


상장 기업의 2.5%에 그친다. 장기 연속 흑자 기업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난(國難)이라고 했던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이익을 냈다는 뜻이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이들의 공통점을 한 우물을 파는 장인(匠人)기업, 내수를 기반으로 하는 단단한 사업 구조,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 등 3가지를 꼽았다.

40년 흑자 기업인 강남제비스코(옛 건설화학)는 ‘제비표 페인트'로 알려진 곳이다. 지난 1952년 창립 이후 페인트 한 분야에만 매진해 왔다. 역시 40년 흑자 기업인 경농은 농약 전문 기업으로 이어왔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도한 차입을 피하고, 잘 아는 사업에 집중하고, 섣부른 사업 다각화로 사업 다악화(多惡化)를 피하는 것이 장기 흑자 기업의 특징”이라고 했다.

신영증권은 금융회사 중 처음으로 50년 연속 흑자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이사(오른쪽)가 지난 12일 열린 비대면 타운홀 미팅에서 임직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변동에 영향을 받는 수출 기업보다는 내수 시장에 주력하는 내수 기업들이 장기 흑자를 내고 있었다. 삼천리 같은 도시가스업은 수요 변동성이 적어 안정적이고, 후발 주자가 들어오기도 어렵다. 50년 이상 흑자 장수 기업에 내수 기반이 확고한 제약회사가 3곳으로 절반을 차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분석됐다. 최근 신약 개발에도 적극 참여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수 판매 기업이다.

김현준 더퍼블릭자산운용 대표는 “제약업이 기본적으로 저마진 시장이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한 뚝심 기업들”이라고 말했다.

대주주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흑자 행진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50년 이상 흑자인 6개 기업의 경우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2~57%에 달한다.

◇삼성전자, LG 40년 흑자 행진

30년 이상 흑자 기업 리스트에는 삼성전자(40년), 삼성물산(50년), 삼성화재(48년), 제일기획(35년), 에스원(33년) 등 삼성그룹 계열사, 포스코(48년), LG(40년), CJ(39년), SK텔레콤(33년), 신세계(36년) 등 대기업들도 포진했다.

대기업 가운데 외형 위주의 경영 전략을 펼친 곳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적자를 내거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이 기업들은 잘 버텨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대표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전자는 석유 파동으로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1980년 마지막으로 적자를 기록한 뒤 40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 40년 흑자 기업은 8곳

코카콜라, 맥도널드, 3M, 월마트, 홈디포, 존슨앤드존슨, 머크, 화이자. 지난 1980년부터 40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미국의 기업은 8곳이다.

본지가 블룸버그 자료를 토대로 S&P500 등 미국 상장 기업 600여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블룸버그의 자료 한계로 50년 이상 기업은 추출할 수는 없었다. 경기 변동에 크게 노출되지 않는 소비재 기업이 많았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평생 팔지 않겠다”고 한 종목이다. 콜라와 햄버거는 불황에도 팔린다는 것이다.

김기주 KPI투자자문 대표는 “애플이나 아마존, 구글같이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은 초거대 기업도 시간이 흐르면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면서 “장기 흑자 기업은 그 자체로 위대한 성과를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