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 거리표지판./로이터 연합뉴스

2020년 ‘코로나 사태’ 시작 이후 금융투자업계의 최고 스타플레이어는 ‘동학개미’와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미군단(개인투자자)이었다. 과거에도 경제위기 회복기에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에 몰린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그 비중이 예전과 다르다. 기관투자자와 외국인투자자와 같은 비중으로 한국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하고 태평양 건너 미국 월스트리트까지 진출했다.

지난해 주가 급등에 주머니를 불린 개미들은 올해 주식시장이 주춤하자 가상자산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의 발언이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을 출렁이게 만들자, 한국 정부는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으려고 가상자산 시장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에서 가상자산 시장으로 이동한 개인투자자들이 대재앙에 휘말려 내년 대선 전에 폭발할까 잔뜩 겁을 먹은 형세다. 동학-서학 개미들은 과연 제대로 움직이고 있나? 지난해의 영광에 매몰되어 올해에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개미군단이 선택해야 할 올바른 투자 전략은 무엇일까?

독자들을 위한 조언을 들으려 지난 5월 18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5번 출구 근처 포스트 타워 27층에 위치한 KTB투자증권 회의실에서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61)과 마주 앉았다. 김 수석은 1986년 신영증권 조사부에 입사한 이래 35년간 여러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하며 주식 시장을 분석하고 자금도 운용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증권업계 ‘구루’이다.

김 수석은 “코로나 초강세장의 끝물인 지금의 주식시장은 과열 양상”이라며 “이미 주가가 많이 올라 향후 오를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지금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은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또 “가치 평가가 어려운 암호화폐에 투자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들을 잘 골라서 자산배분을 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적절한 투자전략”이라고 조언했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물어보기로 했다. 서쪽 창밖 여의도 고층 건물들 위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두어점 떠다니고 있었다.

35년간 증권업계에서 일하다

—증권업계에서 35년 동안 일했다. 그 동안 직접 체험한 사건 가운데 기억에 남는 3가지를 꼽으라면?

“남들도 다 아는 사건들이다. 첫째,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둘째,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셋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이 3가지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외환위기이다. 그 때는 정말 무서웠다. 은행이 망가지고, 산업이 망가지고, 외환 시스템이 망가졌다.”

임창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앞줄 왼쪽)과 미셸 캉드쉬 IMF 총재(오른쪽)가 1997년12월 3일 오후 세종로청사에서 내외신 보도진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 긴급자금지원 최종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조선일보DB

—2020년에 터진 ‘코로나 사태’는 위의 3가지와 비교해 볼 때 어떤가?

“성격이 워낙 다르다. IMF 때처럼 외환위기가 온 것도 아니고, 닷컴버블 때처럼 주식시장에 거품이 생긴 것도 아니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금융파생상품의 거품이 터진 것도 아니다. 바이러스라는 독특한 원인에 의해 세계 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일시 정지된 사건이다. 물론 세계 혹은 한국의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메가톤급이다. 하지만 앞의 3가지와 비교해 봤을 때 그것보다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산시장에 미치는 충격, 주가의 변동성, 정부의 대응 정책의 크기라는 측면에서는 만만치 않지만, 은행 시스템이 망가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난생 처음 본 서학개미 운동

—코로나 사태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시장에 뛰어들면서 동학개미 신드롬을, 해외 주식 시장에 진출하면서 서학개미 신드롬을 불러왔다. 동학-서학 개미 현상은 한국 주식투자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진입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있었다. 2000년대에는 펀드 붐이 불었다.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기관투자자들이 맡아 대신 투자하는 간접투자 시대였다. 개인투자자들의 시장진입이 이번에만 있던 현상은 아니다.”

한 남성이 지난 5월 8일 독일 쾰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맞고 있다./AFP 연합뉴스

—다른 점이 있다면?

“1980년대나 1990년대에는 주식시장이 작았고, 산업도 변변치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개인들의 주식투자 열풍은 한계가 있었다. 기관투자자나 외국인투자자에 비해 움직이는 자금의 규모가 크지 않았다. 2000년대 펀드 붐 당시에는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이 늘어났지만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투자자에게 투자금을 위탁하는 간접투자 형태였다. 이에 반해 지금은 개인들이 대규모 자금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직접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특히 서학개미 현상은 처음 있는 일이다.”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어느 정도 늘었나?

“증시 거래대금 기준으로 볼 때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사상 최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금융자산 내 주식 비중은 2016~2019년 평균 9.8%였는데 지난해에는 38.2%로 급증했다. 작년 3월부터 12월 중 주식거래 활동계좌수는 18.6% 늘었고, 고객예탁금은 63.4% 증가했다. 시장 주도 세력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개인들이 주식시장에 몰린 이유

—개인들이 주식 시장에 몰려든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 3가지이다. 첫번째 이유는 기업들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돈이라는 것은 수익을 쫒아간다. 기초자산인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고, 질도 좋아지고, 성장성이나 투명성이 증가했다. 주주보상도 좋아졌다. 성장성과 이익이 뒷받침 되니까 개인들이 주식 투자에 적극성을 띤 것 같다.”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볼 때 한국 투자자들의 주식투자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2014년 기준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과 비금융자산 비중은 25%대 75%이다. 비금융자산은 대부분 주택이나 토지 같은 부동산이다. 미국은 금융자산이 70%에 달하고, 일본만해도 금융자산이 60%이다. 한국의 25%는 세계적으로 볼 때 불균형이 심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개인들의 뜨거운 재테크 관심은 동학-서학 개미 현상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5월 11일 상장한 SK IET(아이이테크놀로지)의 주가를 바라보고 있는 투자자 모습./연합뉴스

—두번째 요인은?

“세금 규제나 부동산 투자의 한계 때문에 금융 자산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 것 같다. 국내 상장주식 투자는 대주주가 아닐 경우 종목별 보유 금액이 10억원 이하면 양도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에 반해 부동산은 가격도 많이 오르고 세금 부담도 늘었다.”

—세번째 요인은?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한 통화량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작년 2분기에 통화량이 급증했다. 과거의 경제위기와 달리 이번 코로나 사태 때에는 은행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고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푼 돈이 은행 시스템을 거쳐 주식시장으로 몰려 들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종합해 보면 기업이 수년간 위상이 좋아진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해 돈이 많이 풀렸고, 작년에 코로나 사태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가계 부문의 불균형적인 자산 포트폴리오가 변화를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보다 잘하는 기업

—지금 기업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기업들의 사정이 좋아졌다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보다 기본적으로 한국 기업들이 잘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성장산업 쪽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잘 변화시켜 왔다. 가령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 전지, 인터넷 플랫폼, 제약, 바이오 등 성장 사업 분야에서 글로벌 트렌드를 잘 쫒아갔다. 철강, 화학, 조선 부문은 최근 수년간 전세계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우리도 해운산업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한데다 설비 증설도 없어서, 현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남게 됐다. 최근의 ESG(환경, 사회적 책임, 기업지배구조) 이슈도 한국 기업들이 잘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선방은 정부의 경제 정책 보다는 기업들이 시장 흐름에 잘 대응한 덕택이라고 평가한다. 사진은 정책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발언하는 모습./뉴시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뜻인가?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들은 어려울 수 있지만, 코스피를 구성하는 블루칩(우량) 기업들은 미국 기업보다는 부족해도 나름대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그렇게 평가하나?

“환율의 흐름을 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다. 2017년부터 달러가 약세를 보였다. 그 때 대부분의 신흥국 통화도 같이 약세였는데, 한국의 원화는 2017년부터 엔화, 유로화와 같은 비율로 강세를 보였다. 한국의 원화가 신흥국 통화임에도 불구하고 엔화나 유로화 같은 기축통화처럼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것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코로나 사태 때에도 한국, 중국, 대만 등 3개국의 통화가 신흥국 가운데 강세였다. 이 3개 나라가 모두 코로나에 그럭저럭 잘 대응했다. 재정정책도 강하게 폈다. 산업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경기부양책도 적극적으로 써서 아시아 신흥국에서는 돈이 별로 빠져 나가지 않았다. 반면, 터키와 브라질 등에서는 돈이 많이 빠져 나갔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 경제는 외국인투자자들도 매력적인 투자처로 생각할 만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주가지수 4000, 5000 갈 수 있나?

—한국 기업들이 선진국 기업처럼 경쟁력이 있다면 현재 3000대인 코스피 주가지수가 조만간 4000이나 5000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보나?

“한국 기업들의 성장성이 높아지고 질적으로 개선됐다고 해도 오해하면 안된다.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주가가 4000포인트, 5000포인트가 되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

—왜 그런가?

“코로나 이전인 2000~2020년 동안의 전세계 기업 PER(주가 대비 기업이익의 비율)를 비교해 보면 선진국 기업들은 평균 약 16배가 넘었다. 낮을 때는 13배, 높을 때는 20배의 범위에서 움직였다. 반면 신흥국은 평균 10배였고, 7~13배에서 움직였다. 왜 신흥국의 PER가 낮을까? 일단 기업을 믿을 수 없다. 배당도 낮다. 이익 증가율도 높지 않다. 기술력도 약하다. 그래서 글로벌 경쟁력이 약하다. 인구가 많아도 구매력이 작아서 내수 기업도 발달이 안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씨티은행, 존슨앤존슨, 맥도널드 같은 기업들은 전세계 시장점유율이 높다. 높은 PER 기업들은 고성장기업들인데, 미국의 경우 고성장할만한 기업들이 많다. 신흥국 기업들은 대체로 PER가 낮은데, 한국은 투자자 관점에서 전세계 국가를 신흥국과 선진국으로 나눈 MSCI 기준상 신흥국에 속한다.”

씨티은행은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미국의 대표적인 금융회사 가운데 하나이다. 씨티은행 뉴욕의 한 지점에서 고객이 돈을 찾고 있다./블룸버그

—한국의 약점은?

“한국이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갖고 있고 좋은 기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내수 시장이 작고 선진국과 경쟁할만한 브랜드가 적다. 또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미국 기업과 경쟁할만한 큰 기업들이 별로 없다. 현재 코스피 기업들의 PER가 약 12배쯤 된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약 8배였다. 적정 PER가 선진국 수준처럼 15~20배까지 가려면 한국 기업들의 이익이 계속 증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들의 이익이 계속 증가해 한국 주가가 올라가고 개인투자자들의 수익도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너무 급하게 단기간에 과도한 수익을 기대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단기간에 큰 돈을 벌기 위해 원금 손실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든다. 그런데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기대하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화제를 이쪽으로 옮겨봤다.

☞ ②/③편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