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승진 등으로 상환 능력이 높아져 은행에 대출 금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했던 고객 10명 가운데 7명은 거절을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출자들은 소득이나 재산 증가 등으로 신용도와 상환 능력이 개선됐을 때 금융사에 대출 금리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금리인하요구권을 갖고 있지만, 은행이 심사 후 거부한 것이다.
25일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에 접수된 대출 금리 인하 요구는 64만6870건에 달했지만, 28.2%(18만2710건)만 받아들여졌다. 2019년엔 49만7528건이 신청돼 16만2949건(32.8%)이 수용됐다. 금리 인하 요구가 받아들여진 대출 금액은 10조596억원으로 2019년(27조4003억원)과 비교하면 거의 3분의 1토막이 났다.
은행들은 금리 인하 요구를 받아들인 비율이 낮은 것에 대해 “최근 은행 창구에 오지 않고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고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금리 인하 요구가 수용된 대출 금액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2002년부터 은행 약관에 근거가 마련됐지만 10년 넘게 유명무실하게 운영됐고, 은행마다 기준도 제각각이다. 2019년 6월부터 금리인하요구권이 법제화되면서 금융사는 소비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이 제도를 안내하도록 하면서 정착되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 당국은 2018년에 관련 법이 통과됐는데도 2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은행마다 다른 기준을 통일하겠다고 한다”면서 “은행들이 자신들 유리한 대로 금리인하요구권은 운영하면서 혜택을 받은 소비자들이 급격히 줄었다”고 밝혔다.
“재작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땐 금리인하요구권을 쓸 수 있다고 해놓고, 정작 금리 깎아달라고 요구하니 대상이 아니라네요.”
A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은 김모(38)씨는 최근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했다가 거절당했다. “주담대의 경우 신용등급이 금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 은행 홈페이지엔 ‘주담대는 금리인하요구권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주담대 상품설명서엔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이처럼 금리인하요구권은 도입된 지 20년이 됐지만 은행들조차 잘못 안내할 정도로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금리인하 수용된 대출액 국민은행 1.7조→1조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국민은행에 접수된 금리인하 요구 대출건 중 받아들여진 대출 금액은 1조107억원이었다. 1년 전(1조7067억원)과 비교해 40.8%(6960억원) 줄었다. 신한은행도 금리인하 요구가 받아들여진 대출 금액이 2019년 1조405억원에서 2020년 6130억원으로 줄고, 수용률은 96.7%에서 39.6%로 감소했다. 우리은행은 2019년 11조6278억원에서 2020년 2780억원으로 급감했는데, 2019년까진 고객이 요구하지 않았는데 은행이 먼저 금리를 낮춰준 금액까지 포함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신용대출 규제 강화로 대출받은 사람들의 신용등급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다 보니 추가로 금리인하를 해주기 어렵게 된 것”이라며 “비대면 금리인하 요구가 허용돼 접수 건수가 늘면서 수용률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의 설명과 달리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의 경우 금리 인하 수용률이 14.8%(2018년), 23.9%(2019년), 25.8%(2020년)로 늘고있는 추세다. 금리 인하가 받아들여진 대출 금액도 같은 기간 3430억원에서 1조6498억원, 2조6665억원으로 급증했다. 카카오뱅크가 모바일 앱 알림을 통해 금리인하 요구권 행사를 적극 유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은행별로 운영기준 제각각
금리인하요구권은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서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2002년부터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시행했는데, 2019년 6월부터는 금융회사가 이 권리를 고객에게 알리는 것이 법으로 의무화됐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모바일, 인터넷 뱅킹 등 비대면 방식으로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자영업자의 경우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해 재무 상태가 현저히 좋아지면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신용등급이 오르거나 전문자격을 취득했을 때도 신청 대상이 된다. 금융사는 신청 접수일로부터 10영업일 이내에 처리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대출 고객에게 금융사가 금리인하요구권을 알리지 않을 경우 은행에는 최대 2000만원, 보험사에는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아직까지 은행별로 운영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고객이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각 은행에 문의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은행의 경우 2020년 4월 이전에 받은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금리인하 요구를 할 수 없다. 이 은행은 2020년 4월 이후부터 주담대에 신용등급을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