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가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최근 가상 화폐에 투자하는 2030 젊은이들의 손실 위험이 큰 것 같아 경각심을 주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28일 경기 용인시 한국외국어대 글로벌캠퍼스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윤강로(64) KR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서울은행(현 하나은행)에서 선물(先物) 운용을 담당하다가 1996년 8000만원으로 개인 투자를 시작해 8년 만인 2004년 1300억원까지 벌어 16만%라는 경이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름보다 ‘압구정동 미꾸라지'라고 하면 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회사 건물이 있었고, 미꾸라지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선물 시장을 종횡무진한다고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2004년 중국의 갑작스러운 돈줄 조이기로 세계 증시가 공황에 빠졌던 ‘차이나 쇼크’ 이후 2년 만에 벌어놓은 돈을 거의 날렸다.
큰돈을 벌 수도, 날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선물 시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윤 회장은 최근 가상 화폐 열풍에 대해 “투자나 투기 거래의 범위를 벗어난 투전판·도박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다양한 투자 자산을 대상으로 일일 최고·최저가 차이의 5년간 평균인 일중(日中) 변동성을 구해봤더니 가상 화폐가 월등히 높았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일중 변동성은 3~5%로 미국·일본·홍콩 등의 주가지수(1%)나 달러·엔 등 외화(0.5%)는 물론, 원유·구리 등 원자재(1.5%)보다 높았다. “가상 화폐 시장은 가격 안정성을 찾아볼 수 없는 불안한 상태입니다. 투전판이나 도박은 대개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식의 거래로 투자자 대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가상 화폐가 딱 그런 경우죠.” 그는 가상 화폐 투자를 통해 수익을 보는 사람은 초기 투자자를 제외하고 전체 투자자의 2~3%에 그치리라고 내다봤다.
그는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 때문에 언제가 바닥인지 알 수 없어 사놓고 오르기를 장기간 기다리는 ‘바이 앤드 홀드(buy and hold)’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다”며 “장중에 나타나는 작은 등락 폭마다 쉴 새 없이 사고팔아 차익을 노리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물리적으로 사람이 구사하기엔 불가능하다고 봤다. 1~2초 만에 매매해야 하는데 사람의 눈과 손이 쫓아갈 수 없어 손실 가능성만 커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컴퓨터가 대신 투자해주는 시스템 트레이딩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이 분야에서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은 IT(정보통신) 기술 강국임에도 해외에 비해 시스템 트레이딩이 발달해 있지 않습니다. 레버리지(대출 받아 투자) 규제 등으로 다양한 투자 전략을 짤 수 없는 환경도 시스템 트레이딩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볼 수 있어요.” 그는 이 부분이 개선된다면 한국의 젊은 투자자들도 가상 화폐 투자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윤 회장의 취미는 탁구다. 요즘은 별로 안 하지만 한때는 사무실 한쪽에 탁구대까지 갖춰 놓고 즐겼다. 2004년 하루 만에 220억원을 잃었을 때에도 장 마감 후 아무렇지 않게 탁구를 한 뒤 퇴근했을 정도다. 그가 보는 탁구와 투자의 공통점은 반사 신경이 빠르면 유리하다는 것이다. “트레이딩 성공의 관건은 ‘매매 타이밍’입니다. 빠른 반사 신경과 축적된 경험으로 생기는 직감이 어우러지면 좋은 매매 타이밍을 잡을 수 있습니다. 같은 이벤트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진입하고 빨리 청산해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죠.”
윤 회장은 ‘디지털 금’이라 하는 비트코인이 금의 투자 가치를 뛰어넘기는 어려울 거로 봤다. “금의 시가총액은 10조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8조~9조달러까지 내려왔지만, 가격 변동성이 비교적 작기 때문에 전통 안전 자산이자 화폐 기능을 수백 년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적은 생산량 때문에 희귀성도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반면 비트코인에 대해선 “시가총액 1조달러 달성 후 급락하여 고점 대비 50% 정도 하락하는 등 안전 자산이 되기엔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다”며 “익명성을 무기로 성장했지만 그 익명성 때문에 정부나 중앙은행의 환대를 받을 수 없다는 태생적 결함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