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42)씨는 최근 이면도로에서 큰길로 차량을 진입시키다가 큰길에서 직진하던 다른 차가 차선을 바꾸면서 이씨 차의 옆면을 들이 받는 사고를 당했다. 이씨 차는 1000만원 가까운 수리비가 나올 정도로 파손이 컸다. 하지만 가해 차량 운전자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장에 출동한 보험사 직원도 이씨가 이면도로에서 진입하던 중이어서 60%의 과실이 있다며 가해 차량으로 판단내리고 보험료 할증 부담을 안으라고 종용했다. 다음 날 이씨는 지인을 통해 이런 경우 잘잘못을 가려주는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분쟁심의위원회(분심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달여 뒤 분심위에서 과실 비율은 이씨가 10%, 상대방이 90%로 뒤집어졌다. 보험사 직원과 달리 분심위는 “이씨의 차가 절반 이상 진입을 마친 상태에서 상대방 차량이 차선을 급하게 바꿔 돌진한 게 문제”로 판단했다. 이씨는 자기차량보험으로 냈던 수리비도 과실비율에 따라 상대방 차량 보험사에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냈다.

분심위는 작년에만 10만건 넘는 교통사고 분쟁을 심의·의결했다. 손보협회에 따르면 분심위로 법적 소송을  대체한데 따른 경제적 효과는 연간 6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험사가 시간이 오래 지체되는 분심위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얼굴 붉힐 필요 없는 전문가 판단

분심위엔 50명의 변호사가 2년 임기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판·검사나 3년 이상 변호사 경력이 요구된다. 위원들의 변호사 평균 재직 경력은 21년이고 최대 39년 근무한 경우도 있다.

분심위가 처음 구성된 2007년 후 지금까지 62만건의 심의가 청구돼 의결됐다. 해마다 심의 청구·의결 건수는 증가 중이다. 2015년 4만3000여건에서 작년 10만4000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위원 한명당 작년 5000건의 교통사고 분쟁을 심의한 셈이다.

처음 사건이 접수되면 위원 1~2인이 심의하는 소심의와 4인으로 구성된 재심의를 거쳐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려진다. 자율조정이라 법적 구속력은 없다. 작년에 분심위 심의 결과에 대해 95%는 수용하고 나머지 5%는 불복해 소송으로 갔다. 최근 사고 직후 0.03초간의 상황을 기록하는 장치(EDR) 등이 도입되면서 심의도 더 정교화되고 있다.

과실 비율 100대 0의 경우가 81%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80대20(5.6%), 70대30(4.4%), 90대10(3.9%) 등의 순이었다. 심의 후 14일간 이의가 없으면 민사상 화해로 보고 분쟁은 종결된다.

전문가들은 금융감독원의 민원 처리 부담이 해마다 증가세라 분심위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본다. 2017년 16.5일이었던 금감원의 금융민원 평균 처리 기간은 작년 29일까지 늘어난 상태다.

◇고객이 먼저 요구 안 하면 넘어가는 경우 많아

통상 보험사들은 직원들이 교통사고 분쟁을 빨리 처리할 수록 높은 고과 점수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분심위로 잘 가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한 간부는 “왠만하면 고객들에게 분심위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직원 선에서 사고를 마무리 지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고객들이 분심위의 존재를 사전에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의 대상은 차와 차의 사고만 해당되고 차와 보행자 간 사고는 해당이 안 되는 문제도 있다. 주취 상태에서 길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을 운전자도 모르게 치어버리는 일명 ‘스텔스 사고’가 늘고 있지만 분심위가 이에 대한 가해와 피해를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분심위가 조직될 때부터 손해보험사들끼리의 상호 협정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행자의 경우 자동차 손해보험에 가입안 된 경우가 많아 심의 안건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분심위의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이 국회에 통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