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42)씨는 지난 4월 이면도로에서 큰길로 진입하다가 큰길에서 무리하게 차로를 변경하던 다른 차량에 들이받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수리비만 1000만원 가깝게 나올 정도로 큰 사고였다. 하지만 가해 차량 운전자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장에 출동한 보험사 직원도 이씨에게 60% 과실이 있다고 했다.

판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이씨는 다음 날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분쟁심의위원회(분심위)에 심의를 청구했고, 한 달여 뒤 분심위는 과실 비율을 이씨 10%, 상대방 90%로 조정했다. 분심위는 “이씨의 차가 절반 이상 진입을 마친 상태에서 상대방 차량이 차로를 급하게 바꿔 돌진한 게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씨는 자차 보험으로 처리했던 수리비도 과실 비율에 따라 상대방 차량 보험사에 구상권을 행사해 받아냈다.

통상 도로 위에서 사고가 나면 보험사끼리 과실 비율을 협의해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보험사들은 교통사고 분쟁을 빨리 처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씨처럼 억울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고객이 보험사를 통해 분심위에 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고 보험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분심위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사고를 마무리지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고객들이 분심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심위엔 50명의 변호사가 2년 임기 위원으로 활동한다. 판·검사나 3년 이상 변호사 경력이 요구된다. 분심위가 처음 구성된 2007년 이후 지금까지 62만건의 심의가 청구돼 의결됐다. 건당 최대 4명의 위원이 들어가 심의한다. 심의 청구·의결 건수는 2015년 4만3000여건에서 작년 10만4000건으로 급증했다.

분심위는 자율 조정이라 법적 구속력은 없다. 작년에 분심위 심의 결과에 대해 95%는 수용하고 나머지 5%는 불복해 소송으로 갔다. 심의 후 14일간 이의가 없으면 민사상 화해로 보고 분쟁은 종결된다.

다만 분심위는 차량 간 사고만 심의하고 차와 보행자 간 사고는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