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이나 한전처럼 국민주를 만들려는 거겠죠.”(자산운용사 대표 A씨)
카카오페이가 국내 기업공개(IPO) 사상 최초로 일반 청약자 물량 100%를 균등 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공모주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카카오페이 발표에 따르면, 청약 증거금 100만원만 있으면 누구나 동등하게 공모주를 받을 수 있다.
카카오페이는 결제·금융 서비스 회사다. 카카오가 지분 55%를 보유해 최대 주주이고, 2대 주주는 중국 앤트그룹 계열인 알리페이 싱가포르홀딩스(45%)다.
카카오페이의 국내 최초 100% 균등 배정 소식으로 30여년 만에 국민주 역사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주 1호와 2호는 포항제철(현 포스코, 1988년)과 한국전력(1989년) 주식이다. 우량 공기업 주식을 일반 국민에게 매각해 주식투자 인구 저변을 넓히고, 국민의 금융재산 형성을 지원하고, 자본 시장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정부 기대와 달리, 국민주 보급은 썩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포철은 민영화 3년 만인 1991년 주가가 공모가 근처까지 추락했고, 한전도 민영화 2년 후에 주가가 떨어졌다. 증권가에선 국내 자본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주식이 한꺼번에 나오는 바람에 증시에 압박이 됐다고 분석했다.
훗날 재무부 관계자는 “한전과 포철을 공개하면서 공모 방식의 국민주 제도를 채택했으나, 배정 물량이 포철은 1인당 9.7주, 한전주는 19.3주에 불과했고 주가 하락시 민원만 야기시키는 부작용만 낳았다”고 평했다.
주가가 싸늘하게 내려가자, 국민주를 산 중하위 소득계층은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주식을 경쟁적으로 처분했고, 실질배당률이 정기예금 이자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본 개인들의 시위도 이어졌다. 1990년 4월 조선일보 19면 톱기사는 ‘증권가 잇단 시위'란 제목으로, 전국 30여곳에서 주가 폭락으로 격렬하게 항의한 개인 투자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다음은 기사 일부다.
시위자들은 “정부가 국민주 보급등 주식투자를 권유해 놓고 정책적으로 실패하는 바람에 소액 투자자들이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노태우 퇴진”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1990년 4월 28일 조선일보 지면에는 ‘주가 폭락 항의 농성, 여성 투자자, 객장서 자살 기도'란 제목의 기사도 실렸다.
포항제철 주식 7주를 국민주로 받고 주식에 눈뜬 40대 여성 투자자가 주식 투자로 2억원을 날려 자살 기도를 했다는 내용으로, 국민주 보급이 낳은 후유증이었다.
물론 1980년대 후반과 지금은 주식시장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2021년판 카카오페이 국민주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20년차 여의도 트레이더 A씨는 “소액 주주가 수백만명 넘게 조각나 버리면 상장일 매도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희망 공모가 기준 카카오페이의 최대 예상 시가총액은 12조5000억원이나 되는데, 이는 코스피 시가총액 32위인 SK바이오사이언스 다음으로 큰 규모로, 넷마블, 하이브, 대한항공, 삼성화재, 현대제철 등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00% 균등 배정 이벤트를 할 것이 아니라, 공모가 밴드를 낮춰서 진행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카오페이는 오는 7월 29~30일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을 진행해 최종 공모가를 확정하고, 8월 4~5일 일반 청약을 받은 뒤 8월 12일 상장 예정이다.
카카오페이의 총 공모 주식수는 1700만주이고, 주당 공모 희망가는 6만3000~9만6000원이다. 대표 주관사는 삼성증권, JP모간증권, 골드만삭스증권이며, 공동 주관사는 대신증권이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