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화폐 거래소들을 상대로 오는 9월 중순까지 실명(實名) 계좌 발급 여부를 검토 중인 은행권에서 자체적으로 ‘가이드 라인'을 만들었다. 대부업자, 환전상, 카지노 종사자 등 가상 화폐 거래소를 통해 자금을 세탁할 우려가 큰 직업을 가진 고객이 많은 경우, 가격 변동성이 큰 위험한 코인(가상화폐)을 많이 상장한 경우 실명 계좌 발급 가능성이 낮아진다. 고객 직업의 경우 4개 등급으로 구분하는데 환전, 전자상거래 등과 관련된 8개 직업군은 최고 위험도인 ‘VH(very high·매우 높음)’ 등급으로 분류된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은 변호사 등 법무 관련 종사자, 공인회계사 등 회계 관련 종사자 등과 같은 등급인 ‘M(중간)’ 등급이다. 그러나 은행연합회는 정치적 주요 인물과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선 거래소들이 별도로 판단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가이드라인은 “고객이나 실제 소유주가 국내·외 정치적 주요 인물일 경우 자금의 출처와 거래 목적 식별을 포함한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의 ‘가상자산사업자 위험평가 방법론(가이드 라인)’을 은행연합회가 빠르면 8일 공개할 예정이다.

◇고객 직업, 상장된 코인 위험도 등 평가

지난 3월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기존 가상 화폐 거래소들은 9월 24일까지 은행에서 발급해준 실명 계좌를 받았다는 확인서를 받아서 금융위원회에 신고를 마쳐야 한다. 거래소들은 또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도 받아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가상 화폐 거래소는 60여 곳인데, ISMS 인증을 받은 곳은 20곳에 그친다. 이들 중에서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곳만 실명 계좌로 운영 중인 상태다. 은행권은 실명 계좌를 사용 중인 4대 거래소에 대해서도 거래 연장 여부에 대해 추가 심사를 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고객 직업이 중요한 잣대가 된다. 특금법은 거래소를 통한 자금 세탁을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자금 세탁 가능성이 큰 직업이나 업종일수록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대부업자와 환전상, 카지노 관련 종사자, 귀금속·예술품·미술 판매업자, 도박·오락 관련 서비스업종 가입자들이 VH 등급에 속한다. 또 가상 화폐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컴퓨터·소프트웨어 관련 종사자와 전자상거래·통신판매업 관련 종사자도 이 등급에 포함됐다. 돈이 자주 오고가는 숙박업, 음식점업, 주류판매 업종의 종사자들도 ‘H(높음)’등급으로 분류했다. 반면 일반공무원, 판·검사, 경찰관, 의사 등 의료 관련 종사자, 단순 노무 종사자, 교육서비스 관련 종사자 등은 위험 등급이 가장 낮은 ‘L(낮음)’을 부여했다. 또한 자금 세탁 위험이 큰 국가에서 가입한 고객이 많은 거래소도 위험 점수가 높아진다.

또 신용도가 낮은 코인이 거래되는 거래소도 은행 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비트코인(0.8점), 이더리움(1.5점) 등 ‘메이저코인’들에 대해선 위험 점수를 낮게 책정했다. 반면 비트토렌트(3.1점), 퀀텀(3.5점), NEM(3.9점) 등은 높은 위험 점수가 부여됐다. 또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 숫자가 많을수록 불리한 평가를 받게 된다.

◇대주주 평판도 심사에 반영

특금법에 따르면 ‘대표자 및 임직원 횡령·사기 연루 이력’이 금융위의 심사 요건에 포함된다. 대주주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이 없다. 하지만, 은행들이 만든 가이드라인에는 대표자와 임직원은 물론 주요 주주도 심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럴 경우 기존에 은행으로부터 실명 계좌를 발급받은 4개 거래소도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다. 현재 빗썸과 코인원은 농협은행, 코빗은 신한은행, 업비트는 케이뱅크에서 실명 계좌를 발급받고 있지만 재계약을 위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빗썸의 경우 지난 6일 실소유주인 이 모 전 빗썸홀딩스 이사회 의장이 특별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는 점이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김모 BK그룹 회장에게 빗썸 인수를 제안하면서 ‘빗썸코인’을 발행해 빗썸에 상장시키겠다고 속여 계약금 명목으로 112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