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지, 에브리봇, 구하다, 버즈비, 펫픽, 뉴트리, 도그메이트, 얌테이블, 쿠캣, 레페리...

언뜻 보면 안목 있는 벤처캐피탈(VC)의 투자 기업 리스트 같다. 그런데 이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한 큰손은 다름 아닌 GS홈쇼핑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신생 스타트업 대표들이 사업 보고서를 들고 찾아가는 1순위 투자자가 GS홈쇼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쪽 업계에선 유명하다고 한다.

GS홈쇼핑 사옥 ‘GS강서N타워’ 전경.

16일 GS홈쇼핑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으로 GS홈쇼핑이 국내를 비롯, 베트남 등 전세계에 투자한 벤처기업 수는 800곳이 넘는다. 총 누적 취득금액은 4130억원.

투자처는 식음료, 소비재, 빅데이터, 플랫폼, 인공지능(AI), 숙박공유, 배달대행 등 다양하다. ‘GS벤처캐피털'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 올해도 배송 대행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와 명품 직구 플랫폼인 구하다 등 유망 스타트업 2곳에 투자했다.

GS홈쇼핑의 공격적인 스타트업 투자는 다음 주 19~20일 공모주 청약을 받는 걸레로봇 업체인 ‘에브리봇’ 때문에 여의도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에브리봇은 세계 최초로 바퀴 없는 물걸레 전용 로봇 청소기를 개발한 로봇 청소기 전문회사다. 워킹맘들은 걸레로봇이 군소리 없이 청소를 해준다며 ‘남편보다 더 고마운 청소 이모’라고 부른다.

GS홈쇼핑이 중소기업인 에브리봇에 투자한 것은 지난 2017년 가을이다. 당시 GS홈쇼핑은 약 9억5000만원을 투자해 에브리봇의 지분 4.5%를 확보했다.

에브리봇 관계자는 “2015년 설립된 신생 업체인데도 회사 성장성을 믿고 GS홈쇼핑이 과감히 투자해 주어서 큰 도움이 됐다”면서 “GS홈쇼핑은 현재 약 10배 정도 평가 차익을 올렸다”고 말했다.

GS홈쇼핑이 미래 먹거리 발굴을 목표로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것에 대해, 증권업계 반응은 긍정적이다.

투자자문사 대표 A씨는 “특정 상품이 완판되거나 매진되는 상황을 잘 알 테니 VC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또 GS홈쇼핑처럼 현금이 많은 기업이라면 재무팀에서도 영업외 이익을 많이 벌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GS홈쇼핑에 쌓여 있는 현금성 자산은 올 1분기 기준 2100억원에 달한다.

또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도 “(내가) 오너라면 이보다 더 좋은 투자툴도 없을 것 같다”면서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투자하면 결과는 백발백중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허태수 GS그룹 회장/GS제공

증권맨 출신인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GS홈쇼핑의 최고 사령탑에 있었기에 이런 투자가 가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허 회장은 지난 2002년 LG홈쇼핑(현 GS홈쇼핑)으로 시작해 GS홈쇼핑 대표로 재직했다. 지난해 GS홈쇼핑 대표에서 GS그룹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홈쇼핑 업계에 몸담기 전에는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에서 런던법인장, IB사업부 상무 등으로 일했다.

당시 LG투자증권에서 일했던 김모씨는 “허 회장이 홈쇼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유능한 증권맨들을 여럿 데리고 갔다”면서 “GS홈쇼핑에 LG투자증권 출신들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스타트업 같은 비상장 주식은 에브리봇처럼 단기간 10배 수익이 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투자금 전액을 날리는 위험한 투자처이기도 하다. GS홈쇼핑도 이런 리스크를 잘 알고 있기에 아주 확실한 투자처가 아니면 건당 투자 규모는 10억~50억원 안팎으로 크지 않다. 스톤브릿지, BRV캐피탈, 알토스 등 비상장 주식 투자 전문가들인 VC들도 적극 활용하고 있어 눈에 띈다.

이달 초 GS리테일은 GS홈쇼핑을 흡수 합병했다.

한편, GS홈쇼핑은 이달 초 GS리테일과 합병했다. 종전 GS홈쇼핑 주주들은 GS리테일 신주를 배정받았고, 16일부터 GS리테일 주주가 됐다. GS홈쇼핑 주식은 더 이상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