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벌었다니 나도 쉽게 벌 수 있겠지? 이런 마음가짐으로 뛰어 들면 십중팔구 손해 보고 떠나는 곳이 주식 시장입니다.”

한국 증시에서 300억원을 굴리고 있는 A씨는 의사 출신 수퍼개미로 유명하다. 20여년 주식 외길을 걸어온 은둔의 고수다. 시장에서 인기가 없어도 가치 대비 초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 장기간 투자하고 수십배 차익을 내는 가치 투자로 큰 부를 일궜다. 세종시에 살고 있는 전업 투자자라고 해서 재야에선 ‘세종왕개미’라고 불린다.

주식 시장이 위 아래로 요동치는 요즘 같은 혼란기에 300억 수퍼개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A씨는 처음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지만, 왕개미연구소가 익명을 조건으로 끈질기게 설득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다수 수퍼개미들은 유명해지면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더 많다면서 자신을 드러내길 꺼린다. A씨와의 인터뷰는 상편, 하편으로 나눠 게재한다.

/픽사베이

Q. 어떻게 하면 300억 수퍼개미가 될 수 있나.

A. 운(運)이 좋아야 한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진담이다. 시장에 값싼 주식이 많았을 때 주식 투자를 시작했는데 어찌 보면 이것이 내 운이었다. 또 투자를 잘 하는 고수들을 운 좋게 많이 만났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교류하면서 투자 근육을 키웠다. 정말 운이 좋았다.

Q. 코로나 이후 주식 투자가 대중화됐다.

A. 주식시장은 외국인, 기관, 전업 투자자, 데이트레이더, 스캘퍼 등 온갖 매매 주체들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 돈을 벌기 위해 싸우는 곳이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초짜 개미가 돈을 번다? 난 회의적이다. 수익이 났다고 해도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고, 주식판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는 한 언젠가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Q. 주식으로 부를 일궜으면서 투자에 부정적이다.

A. 주식은 항상 오르기만 하는 게 아니다. 주식 시장엔 늘 주기적으로 시련이 찾아 온다. 아무리 우량주를 골라 투자했어도 계좌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코로나가 심했던 3월, 투자 잘해왔던 지인이 확신에 차서 빚까지 내서 투자했다가 반대 매매를 당해 수십 년 벌었던 것을 단 1주일 만에 날리는 것을 봤다.

/픽사베이

Q.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주가는 오르고 내리고 수없이 반복하는데 그때 흔들리지 않고 멘탈을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 주가를 확인하려고 하루 종일 휴대폰 화면만 쳐다보면서 전전긍긍하면 결국 건강만 해친다. 돈이 될 종목을 찾는 것보다는 차라리 과거 성과가 좋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산운용사를 발굴해 돈을 맡기는 게 훨씬 낫다.

Q. 300억 수퍼개미도 펀드에 가입하는가.

A. 7년 전 가치 투자로 유명한 M사의 사모펀드에 가입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후회된다. 나보다 얘네 수익률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내 돈 전부 맡겨 버리고 가족과 놀러 다닐 것을, 뭐 하러 종목 발굴하느라 스트레스 받았는지 모르겠다. 직장인이라면 실력 좋은 운용사를 찾아내서 돈을 맡기고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 최고다.

워런 버핏/연합

Q. 그래도 월급만 갖고 살 순 없다.

A. 본인이 진짜 워런 버핏급 인사이트를 갖췄다고 생각한다면 직접 굴려도 된다. 상위 10%에 들 정도의 강철 멘탈을 갖췄고, 상위 10% 안에 들 정도의 실력을 갖췄고, 시장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지독하게 노력해서 투자할 자신이 있다면 주식 투자를 그때는 권하고 싶다.

Q. 코스피 3200인데 지금 투자해도 되나

A. 현재 한국 증시는 양극화가 심하다. 전세계에서 비싼 주식이 가장 많으면서 또 한편으론 싼 주식이 널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싼 주식이 은행주다. 실적이 좋아서 주가수익비율(PER, 낮을수록 저평가)은 3~5배 수준이고, 배당 수익률은 연 5~6%씩 나온다. 정말 싸지만, 선뜻 남들에게 매수하라고 권하진 못하겠다.

Q. 살아 보니 싼 건 이유가 있더라.

A. 그렇다. 관치 금융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국 은행들은 정부 간섭을 받는다. 배당 정책까지도 정부 통제를 받으니까. 이렇게 규제가 심하니 은행주는 ‘평생 저평가’라는 낙인이 찍혀 인기도 없고 주가도 잘 오르지 않는다. 은행주가 최악인 상황이라서 그런지, 카카오뱅크 상장이 더 기다려진다.

세종왕개미 A씨는 26~27일 진행되는 카카오뱅크 공모주 청약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 지는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요즘 신조어로 표현하면 '팝콘각'인 셈이다. /뉴시스

Q. 카카오뱅크 공모주 청약 전쟁에 참전하는가.

A. 카카오뱅크도 결국 고객 예금 받아 대출해서 돈 버는 은행이다. 다른 은행들처럼 정부 규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은행들은 심각하게 저평가받고 있는데... 뉴스를 보니까 카카오뱅크가 상장하자마자 공모가(3만9000원) 기준으로 단숨에 시가총액 18조5000억원이 되고, 금융권 시총 3위에 랭크된다고 한다. 이미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시총은 눌렀고, 상장 당일 15%만 오르면 금융주 시총 1위인 KB금융(21조원)을 제치고 1등이라니...

Q. 카카오뱅크 공모가가 비싸다는 얘긴가.

A. 카카오뱅크의 작년 영업이익은 1200억원인데, 카카오뱅크보다 시총이 싼 하나금융지주는 작년에만 3조8000억원을 벌었다. 카카오뱅크는 다른 금융사들이 버는 것의 10분의 1도 벌지 못하는데... 지금 주가에는 미래 성장성이 과도하게 선반영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카카오뱅크 주식을 한 주도 살 의향이 없지만, 상장 후에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계속 지켜보겠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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