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카카오뱅크가 증시에 상장해 시가총액 33조원으로 금융 대장주로 등극한 날. 가치 투자자들 사이에선 ‘다시는 은행 주식을 사지 않겠습니다’라는 사진이 화제였다.
사진 원본은 지난 2018년 6월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국회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현수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이 담겨 있는 것이다. 주식 투자자들은 사진 속 현수막 문구를 ‘다시는 은행 주식을 사지 않겠습니다’라고 바꿔 공유했다.
한 주식 투자자는 SNS에 “두 번 다시 은행주를 사지 않겠다, 은행주는 그냥 예금하는 곳이지, 주식 사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아들에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은행주 하지 말고, 만약 한다면 10년이 허비될 것이라고 말하겠다”는 내용으로 반성문까지 썼다.
대형 증권사 부장 P씨는 “1년에 3조 넘게 버는 금융지주 시가총액은 8조원 밖에 안되는데, 1년에 1000억원 버는 회사는 30조 가치를 받다니, 실생활에선 절대 안 일어날 일이 주식시장이라는 미명 하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황당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형 증권사 B씨는 “카카오뱅크 시가총액을 보고 있으면 (실적 대비 저평가되어 있는 우리 회사 주가가) 한심하긴 한데, 당국의 시각이 계속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달 왕개미연구소와 인터뷰했던 주식 자산 300억의 세종왕개미 A씨가 지적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증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과 가장 싼 주식이 공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싼 주식의 대표 주자는 은행주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은행주는 도대체 얼마나 싼 것일까.
10일 NH투자증권에 의뢰해 전세계 은행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조사해 봤다. PBR은 낮을수록 저평가라는 의미인데, PBR이 1배 미만이라면 시가총액이 장부 가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돼있다는 뜻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기준 한국 은행들의 PBR은 0.3~0.5배로, 미국(0.7~1.8배), 베트남(3.1배), 러시아(1.2배), 중국(0.5~0.6배), 유럽(0.4~0.6배) 등과 비교하면 가장 낮았다. 참고로 카카오뱅크의 PBR은 11.3배다.
한국 은행주는 이렇게 베트남이나 러시아 은행보다 몸값이 싸지만, 300억 굴리는 재야의 고수 A씨는 아무리 싸도 매수 추천은 선뜻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의사 출신 수퍼 개미 A씨는 20여 년 주식 외길을 걸어온 은둔의 고수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올림픽 당시 의사 가운을 벗고, 전업 투자의 길을 택했다.
다음은 왕개미연구소가 A씨와 은행주에 대해 나눈 대화 내용이다.
Q. 은행들이 최대 실적을 찍었는데 주가는 바닥이다.
A. 한국 은행주의 저평가는 바로 정부 간섭 때문이다. 지금 은행들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건실해 졌지만, 금융당국이 가만두지 않는다. 최근 신한지주가 3개월 분기배당을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바로 금융당국에서 견제가 들어왔다. 미국 은행들은 전부 3개월마다 배당해서 안정적인 배당주로 자리잡았고 은퇴 생활자들 사이에선 최고 주식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금융당국은 한국 은행들한테는 분기 배당이 시기상조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다면서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 지금 미국 상업은행들은 전부 위험한 배당을 하고 있다는 소린가. 은행 지분 1도 없으면서 정부가 그런 식의 압박을 하다니 터무니없다. 기업은행 같이 정부가 대주주인 곳에 압박하면 모를까.
Q. 은행은 경제의 심장인데, 정부 통제도 필요하다.
A. 원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도를 넘어섰다. 20년 전 정부 돈을 투입해서 살려놨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정부가 은행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 은퇴하면 전부 은행으로 가서 한 자리 꿰찰 생각에 공무원들이 본인 손아귀에서 놓아주질 않는다. 진짜로 시대착오적이고 전근대적인 간섭이다. 은행도 주주들이 있는 민간 기업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당하게 돈을 벌어도 주주에게 배당조차 제대로 할 권한이 없다. 과연 은행을 민간 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Q. 정부 간섭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A. 아들이 철 없는 나이일 때 사고 한 번 쳤다고 해서, 엄마가 직장 잡고 결혼해서 애까지 키우는 아들을 계속 참견하는 형국이다. 이제 어른이 다 됐는데 ‘너는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해’하면서 자꾸 어린이 취급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느 세월에 금융 후진국을 벗어나겠는가. 정부가 계속 이렇게 규제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은행들을 국유화하는 게 낫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