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대장격인 비트코인의 이미지/팀 레크만(위키피디아)

☞ ①/②에서 계속

최종관 한국블록체인평가 대표와의 대화가 너무 기술적인 측면에 치우친 듯해 독자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개인적인 경험과 업계 동향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가상자산(암호화폐, 코인)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가 있나?

“2018년 한국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으로 일할 당시 13개 가상자산 거래소의 보안성과 안정성을 평가한 적이 있다. 그 결과를 보니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코인(암호화폐, 가상자산)에 대한 정보가 매우 취약했다. 코인 상장업체들의 사업 계획서인 백서는 공개 되지만 일반인들이 전혀 알 수 없거나 허접해서 코인 투자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투자자 보호 장치가 없다는 생각에, 이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평가 회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내가 협회를 나와서 이 회사를 만들었다. 과거에 기업 신용평가 회사인 나이스신용평가(옛 한국신용정보)를 다닐 때 전문성을 갖춘 독립적인 신용평가 회사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간부들이 지난 6월 블록체인산업 진흥 전략을 협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한국블록체인협회

—한국블록체인평가를 암호화폐 부문의 다른 평가 회사들과 비교할 때 차이점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첨단산업 분야여서 전통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부문도 간혹 있지만, 우리는 기존 신용평가회사들이 쓰는 엄격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새로운 분야인 만큼 사업 리스크(위험)도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그만큼 더 신중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들의 등급 체계가 4~5개인 반면, 우리는 30개나 된다. 어떤 회사들은 코인 이름이 소셜미디어에 언급된 회수도 평가의 한 항목으로 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항목은 안전한 투자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 뺀다. 사업의 펀더멘틀(기초)과 재무건전성을 중시한다.”

암호화폐 시장의 그림자

필자는 최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신중하고 보수적인 기업 철학이 투자자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블록체인평가의 사업 실적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첨단 사업 분야는 변화무쌍하고 스타트업들이 많기 때문에 회사 운영이나 평가 방식에도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어야 다양한 고객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 대표의 엄격한 기준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제대로 먹혀들고 있는지 물어봤다. 최 대표는 “사업 실적이 당초 계획만큼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암호화폐 시장의 위험하고 어두운 측면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 실적이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세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암호화폐를 발행하려는 많은 프로젝트(회사)들과 평가를 위한 미팅도 하고 계약도 했다. 하지만 계약이 중도에 파기되고 작업이 진척되지 못한 경우가 매우 많았다. 평가를 하려면 프로젝트에 관한 상세한 자료들이 있어야 하는데 프로젝트들은 백서 외에는 자료 주기를 거부했다. 회사 체계가 안 잡힌 경우도 있고, 대표이사가 도덕적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최근 2~3년 간의 세무조정계산서나 감사보고서 등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건네 주지 않은 사례도 많다.”

—필요한 자료를 넘겨 받지 못하면 어떻게 평가하나?

“그런 프로젝트들은 평가를 할 수가 없다. 투자자들에게 정직한 평가 보고서를 공개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두바이에서도 우리에게 평가를 의뢰한 업체가 있었다. 그런데 백서와 기술검토 의견서는 제공했는데 재무적 자료는 요청해도 못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중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올들어 암호화폐 사기와 관련된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두번째 이유는?

“평가를 받으러 오는 프로젝트 대부분이 돈을 내고 평가를 받으면 암호화폐를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시켜 줄 것인지 물어봤다. 우리는 투자자들을 위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평가를 하는 회사이지 상장 브로커가 아니다. 또 상장에 유리하도록 평가 보고서를 잘 써달라고 요구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평가회사의 생명은 도덕성 독립성 중립성인데 상장하기 위해 평가보고서를 사실과 다르게 좋게 써 준다는 것이 말이 되나? 우리의 허위 보고서를 믿고 투자자들이 투자했다가 돈을 날리면 누가 책임을 지나? 우리의 창업 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요구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우리가 상장 약속을 하지 않으니 대부분 평가를 포기하고 간다. 아쉽게도 암호화폐 업계는 아직 이런 수준의 회사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조작된 평가보고서로 상장에 성공한 뒤에 회사 대표가 투자자들의 돈을 떼어먹고 도망갈 회사들이다. 투자자들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세번째 이유는?

“암호화폐를 악용한 불법 다단계 판매나 유사수신 업무를 하는 회사들이 있다. 이런 회사들은 평가를 해봐야 투자부적격으로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거부한다.”

겉보기보다 훨씬 위험한 코인 시장

—암호화폐 시장이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전문가 입장에서 분석해 보면 매우 위험하고 부족한 것들이 많다. 우리가 수많은 항목을 분석해 내린 평가등급도 좋은 등급을 받은 프로젝트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기 보다는, 낮은 등급의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그나마 더 낫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력 사업인 평가업무가 예상보다 부진하다면 회사 경영이 쉽지 않을텐데.

“블록체인 컨설팅 업무를 별도로 하고 있다. 기존 회사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면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 문의해 오는 경우가 있다. 그 회사의 사업 내용을 분석해 보고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블록체인 비즈니스와 기술 모델 자문, 블록체인 도입 효과 분석 등의 컨설팅을 해준다. 컨설팅 결과는 의뢰 회사에만 제공하고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같은 많은 고객을 가진 업체들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사용해 자체 생태계를 갖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한 행사에서 연설하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안토니 퀸타노(위키피디아)

—기존 회사들이 블록체인을 도입해서 경영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사례가 있다면?

“국내 은행을 통해 거래 고객들과 자금 거래를 해야 하는 기업이 고객들과 같은 블록체인 망을 공유하면서 암호화폐로 거래하면 송금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암호화폐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첫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 IEO(Initial Exchange Offering) 모델과 대비해, 기존 사업자들이 경영 혁신을 위해 암호화폐를 발행해 상장하는 이런 방식을 리버스(reverse, 역) IEO라고 부른다.”

개선책은?

—암호화폐 시장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이상 암호화폐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도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어떤 개선책이 있나?

“과거를 되돌이켜 보면 1997년 외환위기는 신용평가 회사들이 매우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기업 부도가 잇따르면서 신용등급 평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번 암호화폐 사태도 이러한 발전 과정을 밟을 것 같다.

암호화폐 가격은 2017년에 급등했다가 2018~2020년 상반기까지 바닥을 쳤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 와중인 2020년 하반기부터 암호화폐의 대장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상승하면서 모든 알트코인(비주류 암호화폐)이 2021년 상반기까지 엄청난 상승세를 탔다. 투기 장세가 연출됐다. 코스피 시장(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을 합친 것보다 많은 거래금액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유통되면서 암호화폐 광풍이 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투자 대상이 되는 암호화폐의 기능을 제대로 알고 평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결과 피해자가 양산되면서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해졌다.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위험을 줄이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정비와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들어간 상태이다.”

외환위기가 한창 진행되던 1997년12월3일 임창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앞줄 왼쪽)과 미셸 캉드쉬 IMF 총재(오른쪽)가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내외신 보도진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 긴급자금지원 최종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조선일보DB

—구체적으로 어떤 개선책이 추진되고 있나?

“오는 9월 24일부터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자신들의 실명확인 입출금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거래소 임원들이 도덕적인 문제가 있거나 상장된 코인(암호화폐) 수가 너무 많으면 은행들이 이 실명 계좌를 발급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 200여개에 이르는 가상자산 거래소 중 일부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상장 코인 가운데 옥석을 가려서 우량 코인만 거래되도록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암호화폐 신용등급 평가가 매우 중요해진다.”

가상자산 거래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게 될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8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임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신용등급 평가를 법으로 의무화할 필요가 있나?

“현재 기업들이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때에는 신용평가회사 두곳 이상의 신용등급을 받도록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암호화폐도 회사채나 기업어음과 마찬가지로 회사가 외부 투자자들의 자금을 사업 자금으로 조달해 쓰는 방식 중 하나이다. 반면 불확실성과 위험은 암호화폐가 회사채나 기업어음보다 더 크므로, 최소한 회사채나 기업어음처럼 독립되고 공정한 평가회사들의 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평가보고서는 거래소에 제공되고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요약본은 공개되어야 한다. 정부가 이번에 암호화폐 제도의 법적인 틀을 마련할 때 이러한 투자자 보호조치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건전한 블록체인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블록체인 시장은 계속 커질 듯

이야기를 나눈지 벌써 2시간 45분이 넘었다. 서쪽 건물의 그림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회의실 창을 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시장에 대한 세계 각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규제 상황은?

“암호화폐가 자꾸 테러나 무기 밀매 쪽으로 활용되니까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암호화폐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도록 관련법을 만들라고 각국에 촉구했다. 우리도 은행들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에 실거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가 점점 투명해지면서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포함해 각종 금융거래에서 벌어지는 자금세탁과 불법송금을 모니터링하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

—블록체인 시장에 대한 전망은?

“블록체인은 중앙집중적 금융회사의 비효율성과 신뢰상실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 민간중심의 탈중앙화 금융시장이다. 그러나 아직 블록체인을 통한 불법거래와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보호 장치가 부족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도 미흡하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제도권 금융으로 진입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이 과정을 지나 블록체인이 제도권 금융으로 정착하면 사기 업체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더 많은 투자자들이 유입될 것이다. 따라서 블록체인 시장은 점진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버핏처럼 신중하게 투자하라

—마지막으로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암호화폐 투자는 주식투자와 같다. 남 이야기 들어서는 안되고, 모르는 주식에는 투자하면 안된다. 정보가 과잉인 시대이다. 시장에서 떠도는 정보를 신뢰하지 말라. 백서를 먼저 한번 읽어보고 회사의 사업이 무엇인지 이해한 다음, 관련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라.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업 분야에 투자할 때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예컨대 삼성전자 같은 우량 기업에서 발행하는 암호화폐와 이름도 없는 회사에서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서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주식의 기초자산이 되는 기업이나 사업의 가치를 꼼꼼히 따져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워런 버핏처럼 암호화폐를 대해야 실패 확률을 줄이고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우리 같은 평가 회사의 정보가 정보 부족을 해소하면서 투자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제삼자에 의한 객관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가 그렇듯이, 신기술인 블록체인의 신용평가도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 그래서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스스로 독립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전통산업보다 신생산업은 기회가 많은 반면, 위험도 크다. 그러므로 주식 투자와 마찬가지로 투자자 개개인이 책임을 지고 정말 신중하게 투자 판단을 해야 한다.”

최종관 한국블록체인평가 대표가 지난 10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투자자들이 암호화폐(코인)의 옥석을 가리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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