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실시간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사면 물리고 놀아야 이긴다는 ‘사물놀이’ 장세인가요?”

“아주 낮은 가격이라고 생각해서 걸어 놨는데 전부 체결이네요.”

20일 코스피가 장중 3049선까지 하락하며 약세를 보이자, 지난 해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해 이렇다 할 하락장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투자자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40분 현재 코스피는 전날보다 1.5% 하락한 3050, 코스닥은 2.6% 넘게 빠진 965에 거래되고 있다. 양 시장 모두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도로 부진한 모습이다. 외국인 매도 속에 원·달러 환율은 장중 1180원을 뚫고 오르면서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지수가 연일 하락해 고수들조차 수익내기 어려워지자, 투자자들 사이에선 ‘사물놀이(사면 물리고 놀아야 이긴다) 장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주가가 빠졌다는 생각에 무심코 매수하면 물리기 쉬운 위험한 장이기 때문에 현금을 쥐고 관망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30대 황모씨는 “작년에는 아무 주식이나 사도 계속 오르길래 주식 시장을 쉽게 봤던 것 같다”면서 “그런 상승장은 공매도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건데, 올해 시장이 바뀐 걸 모르고 투자하고 그 동안 번 게 1주일 만에 다 날아가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 증시 하락은 델타 변이 확산 속에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가시화, 중국발 리스크 등 여러 변수들이 겹쳐지며 생겨났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9거래일 연속 순매도 중인 외국인은 이날도 3000억원 어치 팔아 치우는 중이다.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장중 7만2500원까지 빠지는 등 약세를 보이면서 지수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증시 참여자들은 중국 경제지표 둔화로 이날 인민은행이 금리 인하나 지준율 인하 등과 같은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무 조치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중국 정부의 유동성 축소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중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외국인 매도세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인민은행 /연합뉴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가 주요국 증시와 디커플링되면서 장중 사상 최고치 대비 5% 넘게 하락하고 원 달러 환율도 1180원을 넘어섰다”면서 “북핵 리스크 같은 한국 고유의 꼬리 위험이 아니라면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단기 반응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높을수록 고평가)은 10배 후반인데 이는 2011년 이후 평균치를 밑도는 것”이라며 “한국의 견조한 기업이익 레벨을 감안한다면 현 지수대는 단기 반등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

연이은 주가 하락에 증권가에선 ‘깡통 계좌’ 공포도 커지고 있다. 주가 하락으로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매각하는 반대매매 금액은 지난 18일 기준 370억원을 기록했다. 7월 달만 해도 하루 평균 100억원 규모였는데 지난 13일 300억원을 넘어서더니 사흘 연속 300억원대다.

코스피가 올해 최고점 대비 7.6% 하락한 상황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빚을 내 투자)는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개인의 신용융자 잔고는 25조6111억원으로 집계됐다. 신용융자 잔고는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금액이다. 통상 빚투는 증시가 강세를 보일 때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증시가 약세인 데도 빚투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