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펀드’ 운용을 담당할 금융회사의 투자를 총괄하는 임원에 관련 경력이 없는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선임돼 논란이 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은 지난 1일 발송한 주주 서한에서 “오는 16일 주총에서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신임 투자운용2본부장에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한다”고 밝혔다. 한국성장금융은 산업은행과 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등 금융 분야 공공기관들이 출자해 만든 회사로, 사실상 공기업이다.

투자운용2본부장은 2025년까지 총 20조원 규모로 조성하기로 한 뉴딜펀드 운용을 책임지는 자리인데, 황 전 행정관은 금융 관련 경력이나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 기획조정국장, 19대 대통령선거 전략기획팀장 등을 거쳐 2017년부터 약 2년간 조국 민정수석 밑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2019년 4월 은행들이 출자해 만든 구조조정 전문기업인 유암코 상임감사로 선임됐는데, 당시에도 관련 경력이 없어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유암코 상임감사는 2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기관 투자자들의 의결권을 조언하는 업체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투자운용본부장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한 자리”라며 “벤처캐피털 등 투자 경력이 없다면 적절한 인사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는 한국성장금융 주요 주주인 산업은행이나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모르고 있었고, 그런 인사에 관여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는 “한국성장금융 주주이긴 하지만 경영에 관여를 하지 않아 알지 못했다”고 했다.

2016년 설립된 한국성장금융은 성장금융사모투자합자회사가 지분 59.2%를 보유한 최대 주주고, 한국증권금융(19.7%)이 2대 주주다. 산업은행(8.7%)과 기업은행(7.4%), 은행권청년창업재단(4.9%) 등도 지분을 갖고 있다. 중소·벤처기업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국책은행과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공동으로 운용하던 ‘성장사다리펀드’를 효율적으로 운용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최대 주주인 성장금융사모투자합자회사는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 등 금융 분야 공공기관들이 설립한 업체로, 사실상 정부 산하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성장금융은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인 ‘뉴딜펀드’를 운용하는 총괄 책임을 맡고 있다. 뉴딜펀드는 2025년까지 정부 예산 3조원,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 4조원 등 총 7조원으로 모(母)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여기에 민간 자금 13조원을 끌어들여 펀드 규모를 총 20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뉴딜펀드는 정보통신기술(ICT), 신재생 에너지 등 분야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성장금융은 최근 투자운용본부를 2개로 분리해 뉴딜펀드 운용을 전담할 투자운용2본부를 신설했고, 그 책임자에 황 전 행정관을 선임한 것이다. 그는 유암코 상임감사 임기가 반년 정도 남았지만 한국성장금융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성장금융측은 “한국성장금융이 기업구조혁신펀드도 운용하고 있는데, 황 전 행정관이 유암코 상임감사를 하면서 구조조정 경험을 쌓았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본지는 황 전 행정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작년 11월까지 금융 공공기관에 선임된 임원 134명 중 친정권 인사 등이 63명으로 47%에 달해 ‘낙하산 인사’가 문제가 됐다. 최근에도 천경득 전 청와대 행정관이 금융결제원 상임감사로 선임돼 논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