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센트는 어떻게 카카오뱅크 주주가 된 건가요?”
한국 금융주 원톱인 카카오뱅크의 핵심 주주 리스트에 중국 자본이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의 거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는 카카오뱅크 설립 멤버로, 현재 카카오뱅크 지분 1.6%를 갖고 있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금융에서 모바일 메신저의 위력을 경험한 텐센트가 대한민국 최대 모바일 메신저 회사가 만든 카카오뱅크 설립 주주로 참여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상장 후 3개월 의무보유 제한에 걸려 있어 현금화하진 않았지만, 우정사업본부의 1조 엑싯(투자 회수) 사례를 고려하면, 텐센트는 카카오뱅크 투자로 6년 만에 5000억원 가량 평가 차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인터넷 은행 초기 상황에 정통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카카오뱅크 설립 당시 각 분야에서 탑인 기업들을 주주로 끌어오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면서 “텐센트는 카카오가 인바이트(초대)해서 연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텐센트는 중국의 국민 메신저라는 위챗을 갖고 있는데, 그 덕분에 텐센트의 위챗페이가 경쟁사인 알리페이가 10년 넘게 구축한 중국의 페이 시스템을 3년 만에 따라잡았다고 한다.
또다른 금융권 전직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에 내야 하는 인터넷 은행 인가 신청서에 해외 진출 평가 항목이 있었는데, 네임 밸류 있는 텐센트를 주주로 끌어 들여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면서 “텐센트는 인터넷 은행인 위뱅크(Webank)를 2015년에 설립한 노하우가 있어 카카오뱅크 입장에선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중국 자본 참여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인터넷 은행이 성공할 것이란 확신은 없던 시기였기에 크게 주목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처음 출범하는데 어떻게 중국 단일회사 자본이 지분을 할당받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면서 “당시 대주주가 누구냐보다는 사업 계획성을 더 많이 따졌다고 하지만, 역지사지해서 중국 인터넷뱅크에 네카오(네이버+카카오)가 주주로 들어갈 수 있겠느냐,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텐센트는 카카오 연줄로 카카오뱅크의 초기 투자자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카카오와 텐센트는 보통 사이가 아니다. 텐센트는 카카오의 3대 주주로, 자회사(Maximo PTE)를 통해 카카오 지분 6.3%(약 28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텐센트가 카카오에 투자한 건 지난 2012년.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성장성을 믿고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김범수 카카오 의장에게 720억원을 베팅했다고 한다. 주당 4000원(액면분할 환산적용)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그때 투자했던 돈 720억원은 지금 3조6400억원으로 불어나 있다. 그야말로 코인 시장에서 말하는 돈 복사 같은 투자다.
텐센트의 돈 불리기 마법을 좀 더 살펴 봤다. 현재 유가증권 시장에서 텐센트가 핵심 주주로 있는 기업은 카카오(6.3%), 카카오뱅크(1.6%), 카카오게임즈(4.29%), 크래프톤(13.57%), 넷마블(17.52%) 등 5곳이다. 어쩌면 이렇게 한국의 핫한 우량 IT기업들 지분은 다 갖고 있는지 부러울 정도다.
최근 공시 자료를 근거로 계산해 보니, 10일 기준 텐센트의 보유 지분 평가액은 9조2158억원이었다. 그나마 카카오가 정부 규제 이슈로 주가가 급락해서 이 정도인 것이지, 지난 달 주가로 계산했다면 10조원은 가볍게 넘었을 것이다. 카카오페이지(카카오 콘텐츠 자회사), 네시삼십삼분(게임 회사) 같은 비상장 회사 지분 역시 제외한 수치니까, 실제 한국 시장에서 텐센트가 투자한 회사들의 지분 가치는 더 크다.
시가총액 705조원에 달하는 공룡 텐센트는 9조2000억원이 넘는 한국 상장사 지분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돈 가방을 들고 한국에서 또 다른 유망주를 열심히 찾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니 말이다(국내 게임업체 넥슨 매각설이 나왔을 때 유력한 인수 후보가 텐센트였다). 아무래도 중국 현지에서는 정부 규제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다 보니, 바깥 투자에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그런데 텐센트의 투자 이력을 살펴 보면, 단기 차익 실현보다는 오히려 전략적인 제휴나 투자에 더 방점이 찍혔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 스타트업 투자는 특성상 하이 리스크인데 거액을 투자하고 잭팟을 터뜨리는 걸 보면, 텐센트의 기업 보는 눈이 굉장히 밝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경영권에 크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장기로 보유하는 투자 스타일은 텐센트가 최대 주주에게서 배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텐센트는 중국 기업이지만, 최대 주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내스퍼스(28.86%)라는 곳이다. 소프트뱅크와 함께 글로벌 투자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내스퍼스는 지난 2001년 텐센트 주식을 약 3200만달러(약 357억원)에 사들였는데, 현재 그 가치는 2497억달러(약 279조원)에 달해 78만4200% 상승했다.
내스퍼스의 초장기 투자법은 첫 지분 매각 시점에서 알 수 있다. 지난 2001년에 텐센트 주식을 사들인 내스퍼스는 지난 2018년 3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지분 매도에 나섰다. 내스퍼스는 17년 만에 처음으로 텐센트 지분 1%를 팔아 100억달러(약 11조원)의 차익을 챙겼다.
한국 증시에서 소리 소문 없이 점점 커지고 있는 텐센트의 영토. 10년 뒤엔 지금보다 얼마나 더 커져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