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자산에 대한 과세를) 조정·유예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이라든가 정책의 신뢰성 측면에서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지난 6일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원래 정부 방침대로) 내년부터 가상 화폐 등 가상 자산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원래 정부 방침대로 내년부터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홍 부총리의 생각과는 달리, 국회에서는 “내년에 선거가 두 개나 있기 때문에 연내에 가상 자산 과세를 미루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3월)와 지방선거(6월)가 있기 때문에 연말에 여야가 합심해 관련 법을 바꿀 것이라는 겁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5월 언론 인터뷰에서 “가상 화폐 과세를 1년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유경준 의원(2년 유예), 윤창현·조명희 의원(1년 유예) 등이 가상 자산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에도 홍 부총리가 자신의 주장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홍 부총리는 작년에도 정치권의 압박에 밀려 국내 주식 양도소득세 납부 대상인 ‘대주주’의 기준을 ‘한 종목 10억원 이상 보유’에서 ‘3억원 이상 보유’로 강화해야 한다는 기재부의 입장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항상 정치권의 압력에 백기를 든다는 의미로 ‘홍백기’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가상 화폐 과세 유예는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지만, 정부가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유경준 의원은 “3개월 뒤 과세를 한다고 해놓고 해외 거래소를 통한 거래 등에 대해서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국가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만 얘기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상 자산의 일종인 NFT(대체 불가 토큰)에 대한 과세 방침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가상 자산 과세에 대한 준비가 치밀하지 못하다 보니 ‘좀 더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