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있는 스톱(stop) 버튼을 잘 누르는 사람이 투자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박종석(40)씨는 주식 투자로 재산만이 아니라 인생을 날릴 뻔한 경험을 전하는 ‘살려주식시오’라는 책을 지난 5월 냈다. “5년간 주식 투자로 3억2000만원을 잃고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다 어렵게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주식 투자의 출발점부터 잘못됐었다고 했다. “졸업 후 성형외과·피부과 의사가 된 친구들이 정신과 의사인 나보다 5배 넘게 버는 것을 보며 다급해졌습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에 부모님 부양까지 해야 할 처지라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죠.”
◇첫 투자 성공이 화근이었다
첫 주식 투자에 성공한 것이 화근이었다. 삼성전자 주식에 2011년 3월 투자한 3000만원이 5개월 만에 6000만원으로 두 배가 됐다. “‘나는 주식 고수’ ‘정신과 의사라 욕망도 조절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생겼어요.”
2011년 말 삼성전자 투자로 번 5000만원에 마이너스통장 대출 3000만원을 얹어 SK이노베이션·현대차·대한항공에 넣었다. 이때부터 실패가 시작됐다. 투자 이틀 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주가가 추락한 뒤 계좌에 남은 돈 6800만원을 SK이노베이션에 투자했다. “이성은 이미 마비됐고, 대뇌피질은 욕망으로 물든 상태였어요.”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자만심으로 투자금의 80% 날려
2015년 3월 서울대병원 정신과 중독 부문 전문의로 입사했다. 두 달간 미국 여행을 다녀온 뒤 모든 주식 계좌를 정리하고 일에만 집중하던 때 SK이노베이션 주가가 뜨기 시작했다. “잃은 돈을 만회해야겠다”며 2015년 9월 적금 2억원을 깨고 은행 대출 1억원을 합쳐서 만든 3억원을 장외 주식과 코스닥 바이오주에 집어넣었다. 제대로 종목 분석도 안 하고 찌라시(주식 정보지)만 보고 투자했다. 4개월 만에 1억5000만원을 날렸다.
2016년 2월 월급 올려준다는 전북 전주시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주식에 미쳐있는 상황이었다. 1억원을 물타기(주가가 떨어질 때 주식을 더 사서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는 것)에 쏟아부었다. 테마주까지 손댔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과 관련된 정치 테마주에 투자했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2016년 12월에 확인하니 4억원을 집어넣은 계좌에 80%는 사라지고 8400만원만 남아있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찾아왔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고, 병원에서는 권고 사직을 당했다. 36살의 정신과 전문의가 주식에 미쳐서 재산을 날리고 병원에서 쫓겨났다.
정신과 동료 의사들에게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라”는 조언을 듣고 경북 안동시 병원으로 옮겼다. 주식과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비밀번호를 틀려서 주식 계좌에 접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시작 페이지를 서점으로 바꿨다. 2017년 여름 오른쪽 눈에 근시성 황반변성이 생겨 실명 위험까지 겪었다. “여기서 주식에 다시 손대면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식이 생각나면 줄넘기를 했다.
◇종목 투자는 투자금의 3% 이내만 한다
그는 안동에서 1년을 보내고 2018년 초 서울로 올라왔다. 계좌를 열어봤더니 8400만원이 2억5000만원이 돼 있었다. 여자 친구 조언대로 그 돈으로 경기도에 작은 아파트를 사고 병원도 열었다.
“제대로 투자해 보겠다”고 마음먹고 뒤늦게 재무제표 보는 법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투자를 재개했는데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지수형 상품에 주로 투자하고, 직접 투자는 총투자금의 3% 이내로만 1~2주 숙고한 뒤에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켰다. 그는 “100%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한발 떨어져서 지켜볼 수 있어야 주식 투자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평소에 직관의 힘을 키워 놓고 생각을 많이 해두고 있다가 결정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단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