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출 규제로 대출 금리가 급등하는 가운데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의 대출 금리에 붙는 가산 금리가 3%를 넘어섰다. 가산금리가 3%를 넘은 것은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3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은행들은 대출해줄 때 수익을 내기 위해 기본 금리에 일정 비율의 가산 금리를 추가해 금리를 결정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16일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1등급 기준)는 연 3.32~4.43%, 주담대 금리(고정)는 연 3.768~5.068%이다. 8월 말에 비해 각각 0.3%포인트, 0.7%포인트가량 올랐다. 대출금리가 오른 것은 은행들이 9월부터 가산금리를 급격히 올렸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9월 5대 은행의 신용 대출에 반영된 가산금리는 3.006%로, 8월에 비해 0.186%포인트 상승했다. 가산금리와 상승폭 모두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다.

가산금리 급등은 금융 당국과 은행들의 합작품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금융 당국이 가계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은행들이 대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가산금리는 정부 대출 규제가 한층 강화된 10~11월에는 더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25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신용 대출 금리는 연 5%, 주담대 금리는 연 6%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들은 대출 금리는 빠르게 올리지만 예금 금리를 올리는 데는 인색하다. 예금 금리(1년 만기 정기예금)는 최고 연 1.5%에 불과하다. 지난 3개월간 0.2%포인트 정도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은행의 가계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간 격차는 약 11년 만에 최대치로 벌어졌다. 금융 당국이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 금리 상승으로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보다 대출을 줄여 가계부채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대출 금리 급등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는 고승범 금융위원장의 입장과 달리 금융 당국은 최근까지도 은행들의 가산금리 적정성 여부를 점검해왔다. 2017년 10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시중은행과 간담회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가산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큰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은행의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지속해서 점검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신한은행이 그해 12월 가산금리를 0.05%포인트 인상했다가 금융 당국 권고에 제자리로 돌려놨다. 이후에도 금융 당국은 가산금리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은행들에 무더기로 경고를 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압박을 받으면서도 가산금리를 쉽게 올리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2.7% 수준이던 5대 은행 가산금리는 올해는 8월까지 2.8% 수준으로 0.1%포인트 올리는 데 그쳤다. 그러다 고승범 위원장이 취임한 후 9월 10일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금리를 은행 자율로 맡기겠다”고 하자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했다.

예대금리 차이(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가 벌어지면서 은행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19개 국내 은행의 3분기 이자 이익은 11조6000억원으로 작년 3분기보다 1조3000억원 늘었다. 올해 3분기 예대금리 차이는 1.8%포인트로 작년 3분기보다 0.04%포인트 커졌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정부는 대출 금리가 많이 올라야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며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가산금리를 통해 은행들이 불필요한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은 대출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고 위원장은 17일 여신전문금융업계와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금리 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출금리 동향, 예대마진 추이 등을 모니터링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