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사옥

900조원 넘게 굴리는 투자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지난해 건설·화장품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종목들은 경기의 호전·위축 등에 크게 영향받는 ‘경기 민감주’다. 반면 국민연금은 금융·제약 등 경기 영향을 적게 받는 ‘경기 방어주’를 팔아 비중을 낮췄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이 돈줄을 조이는 긴축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주식시장이 단기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중장기적으로 전체 경기가 호전될 것이라는 데 베팅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 운용 규모는 작년 2분기 말 현재 908조원으로, 공무원·사학·군인연금을 합친 국내 4대 공적연금(944조원)의 96%에 달한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약 876조원)보다 크다. 국민연금은 이 중 164조원 정도를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2600조원)의 6.3% 정도를 차지한다. 국민연금의 투자 경향을 보면 향후 증시 방향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건설·화장품 등 경기 민감주 매수

10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가진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257개로 전체 2356개 중 11%였다. 국민연금 지분율이 높은 상위 10종목을 업종별로 구분하면 건설이 3개로 제일 많았고, 화장품이 2개로 뒤를 이었다.

국민연금 지분율이 가장 높은 종목은 화장품 기업 코스맥스(14.3%)였다. 2020년 말에는 국민연금 지분율이 12.9%(20위)였는데 1년 만에 1위로 치고오른 것이다. 화장품·패션 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도 2020년 말 58위(11.1%)에서 작년 말 3위(13.5%)로 급등했다.

건설 업종에서는 DL이앤씨(13.4%)·티와이홀딩스(13.1%)·GS건설(13.1%)이 상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회복기에는 건설 경기가 대체로 좋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건설주는 작년 3분기 실적 부진 등으로 주가가 크게 낮아진 데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공급 확대를 외치고 있어 향후 상승 잠재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키움증권은 “정부의 주택 공급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건설주 상승을 전망했다. 코로나 확산이 진정되고 외부 활동이 늘면 화장품·패션 업종도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연금은 경기 회복기에 업황이 개선되는 화학(롯데정밀화학·13.5%)과 반도체(DB하이텍·13.1%) 주식도 지분을 늘렸다. 또 방위 산업 기업인 LIG넥스원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지대공미사일 ‘천궁’ 4조원어치 판매 계약을 맺는 등 호재 등이 겹치며 국민연금 지분율이 2020년 말 71위(10.7%)에서 작년 말 2위(14.2%)로 뛰어올랐다.

◇금융·제약 등 경기 방어주는 매도

반면, 국민연금은 금융·제약·식료품 등 경기 방어주는 팔며 비중을 축소했다. 삼성화재는 10.7%에서 9.7%로, DB손해보험은 10.3%에서 9.9%, 신한금융은 9.8%에서 9.2%로 비중을 각각 낮췄다.

대웅제약 그룹 산하 신약 연구·개발(R&D) 전문 기업 한올바이오파마는 2020년 말 13.5%(2위)에서 8.4%(105위)로 국민연금 지분율이 크게 떨어졌다. 신세계푸드는 12.3%에서 10.7%로, 영화·방송 콘텐츠사 제이콘텐트리는 11.6%에서 9.4%로 비중이 낮아졌다.

국민연금은 경기에 민감한 종목이라 해도 이미 많이 오른 종목은 팔아치웠다. 특히 작년 증시가 호황을 맞으며 사상 최대 수익을 거둔 증권주가 타깃이 됐다. 한국금융지주는 2020년 말 국민연금 지분율 4위(13.5%)에서 작년 말 32위(11.2%)로, 삼성증권은 7위(13.4%)에서 17위(12.4%)로 각각 순위가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라고 늘 맞는 투자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과도하게 뒤쫓아 투자하는 것은 주의하라고 조언한다. 국민연금 투자운용팀장을 지낸 홍춘욱 EAR리서치 경제연구소 대표는 “국민연금도 투자에 자주 실패하지만 주가가 오르면 팔고 폭락기에 저가 매수하는 전략을 꾸준히 펴 실패를 만회한다”며 “개인들은 국민연금 투자 목록 가운데에서도 업종 대표 종목에 길게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