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처음으로 열린 14일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연 1.25%로 정했다. 이로써 한은 기준금리는 코로나 경제 충격이 발생하기 전인 2020년 초 수준으로 돌아갔다.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지만, 물가 상승 압력이 크고 초저금리가 한국의 가계 부채를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게 했다는 점이 반영됐다.
한은은 “앞으로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시기는 코로나 전개 상황과 성장 및 물가 흐름의 변화, 금융불균형 누적 위험, 기준금리 인상의 파급효과,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코로나 사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자 경제 충격을 줄이기 위해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해 연 0.75%로 낮췄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경제 충격으로 이어지자 같은 해 5월에는 연 0.5%까지 끌어내렸다. 이후 국내 경제가 양호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물가도 오르면서 1년 3개월 뒤인 지난 해 8월 연 0.75%로 올렸다. 지난해 11월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려 연 1%로 정하면서 ‘제로(0%대) 금리’ 시대를 끝낸 후 2개월 만에 금리를 추가로 올렸다.
◇심상찮은 물가···미 연준도 “코로나 부양 끝”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배경에는 심상찮은 물가 상승률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12월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3.7% 상승했다. 3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보인 것이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론 2.5% 상승해 2011년(4.0%)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한은은 글로벌 공급병목 등으로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입물가도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수출물가지수는 108.29로 1년 전보다 14.3%, 수입물가지수는 117.46으로 17.6% 상승했다. 2008년 이후 최대폭이었다.
미국 등 주요국들도 코로나 이후 시행해온 부양책을 마무리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7% 상승하면서 40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마무리되는 3월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해 3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전망했는데, 이제는 4차례 인상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해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현지 언론사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올해 0.25%포인트씩 3차례 인상을 전망하고 있다”면서 “만약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는다면 네 번 인상을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금리 4회 인상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WSJ는 “물가 급등이 새해에도 계속돼 4회 인상을 공개 지지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1900조 임박한 가계부채···“3.2조 이자부담 가중”
이번 기준금리 인상은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과도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반영됐다. 지난 해 9월말 기준 우리나라 총 가계부채 잔액은 1845조원이었다. 연말에는 금융 당국이 강도 높고 직접적인 대출 규제를 펼쳐 증가세가 꺾이기는 했지만, 올 상반기 19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4일 범금융 신년 인사회 신년사를 통해 “금융 완화 조치의 정상화 과정에서 과도한 레버리지(차입)와 업황 부진에 직면한 일부 가계와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대외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내부 취약 요인은 금융시스템의 약한 고리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더욱 예의 주시하면서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가계 대출 가운데 기준 금리 인상 영향이 반영되는 변동금리 비율이 8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해 11월 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중 고정금리 대출은 17.7%에 불과했다. 10월(20.7%)과 비교하면 한 달 사이 3.0%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즉 변동금리가 82.3%에 달한다는 것으로, 이 비중은 2014년 1월(85.5%) 이후 7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해 8월 이후 기준 금리 인상과 함께 은행권의 가산 금리 인상까지 더해져 가계 대출 금리는 급격히 오르고 있다. 작년 8월 연 3.97%였던 은행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11월에는 5.16%로 1%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이번 금리인상으로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은 3조2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