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②편에서 계속
최석영 외교부 전 경제통상대사는 2010~2012년에 외교부 FTA(자유무역협정) 교섭 대표를 맡아 한·미 FTA 추가협상과 국회 비준을 담당했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위생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내에서 ‘광우병 파동’이 벌어진 이후였다. 많은 일을 겪었을 것 같아 뒷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대화는 그의 외교관 생활 37년 중 가장 중요한 협상이라고 볼 수 있는 주제로 넘어갔다.
협상 ③ 한미 FTA 추가 협상
―한·미 FTA 추가 협상을 하게 된 경위는?
“한·미 FTA는 2007년 6월 양국 정상이 서명했다. 그러나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고 미국 의회도 민주당이 장악하면서 미국 의회의 인준이 무기한 표류됐다. 한국도 2008년 초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야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한·미 FTA를 극도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자동차, 쌀, 쇠고기, 농산물, 의약품 등 추가 시장개방을 요구했으나 우리는 거부했다.
2010년 6월 오바마 대통령이 그해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현안 이슈를 타결하고 의회 인준을 추진할 것을 제의했다. 한국은 상응한 반대급부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반대했다. 이를 위한 실무협의가 11월 11일 정상회의 전날 밤까지 진행됐다. 그러나 결국 미국의 강경입장으로 실패했다. 정상회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한달 내 추가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
―추가협상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2010년 12월 초에 미국 메릴랜드주 컬럼버스의 한 호텔에서 최종 협상이 열렸는데 난항이 계속됐다. 양측이 기싸움을 하는 와중에 미국 수석대표인 마이클 프로만 백악관 NSC(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이 갑자기 ‘조지 워싱턴을 빼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다들 몰랐다. 자동차, 쇠고기 협상을 하는데 조지 워싱턴이 왜 등장하나? 곧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당시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에 진입해 무력 시위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압박인 셈이다.”
항공모함 발언이 나온 배경
―미국이 왜 이런 말까지 하게 됐나?
“2007년 6월에 한·미 FTA가 체결된 뒤 미국 내 상황에 변화가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 3’ 자동차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자동차 노조가 불만을 표시했다. 외국, 특히 한국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장악한 탓이라고 주장하며 한국과 자동차 협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자동차 협상이 미국 내부의 정치적 문제가 된 셈이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 들어갈 때 3년간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되어 있는 시한을 4~5년 뒤로 미뤄달라고 했다. 한국이 동맹국인데 그것도 못들어주면 항공모함을 빼겠다고 한 발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어떻게 대응했나?
“경제 협상을 하는데 안보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미국측의 인내가 고갈됐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국이지만, 동맹국 간 협상을 할 때에도 매우 중요한 순간에는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간다.
항공모함 이야기가 나온 뒤에 양측 간에 갑자기 깊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정회를 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협상을 재개했다. 협상 마지막 단계에 가면 이런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막판에는 서로 거칠어지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로간의 마지노선이 확인된다. 그리고 합의의 싹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미국의 자동차 관련 요구와, 미국산 돼지고기의 관세철폐기한 연기를 주장한 우리의 요구가 절충되면서 타결이 됐다.”
쌀을 양보하지 않으려면
―협상을 할 때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어떻게 지키나?
“쌀은 우리가 절대 개방할 수 없는 항목이었다. 쌀이 정말 중요해 우리가 개방할 수 없다고 해도 미국이 반드시 그것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미국도 우리가 먹는 단립종(short grain) 쌀이 미국 아칸소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생산되는데 그 곳 농민들이 한국 수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의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할 때 우리가 쌀을 지키려면 그냥 우리 입장을 호소만해서는 안된다. 미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연안해운법(Johns Act)은 미국 항구 간 화물 운송은 미국 선박회사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cabotage). 미국 해운·항만 근로자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이 조항은 미국 정치권이 표심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이슈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했다.”
최 전 대사는 이 대목에서 가슴 속에 뜨거운 애국심이 솟구쳐 오르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윗옷을 벗고 벽쪽 백판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백판 위에 한국 쌀과 미국 연안운송의 대응관계를 그려가며 한참 동안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미국이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하자 우리는 미국의 연안해운 운송업도 우리에게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연안해운 운송업은 미국이 절대 양보하지 못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 쌀도 지키게 됐다.
협상을 할 때는 상대방의 선의보다는 약점, 즉 아픈 곳을 같이 찔러줘야 한다. 나의 강점과 약점, 위기요인을 잘 알아야 하고, 상대편의 강점과 약점도 잘 알아야 이익의 균형을 잡고 국익을 지킬 수 있다. 외교관이 협상한다고 하면 협상장 분위기가 점잖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색적인 말이 오고가는 경우가 많다.”
―한·미 FTA 재협상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강대국과의 협상장은 기본적으로 힘의 불균형이 지배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약소국 협상대표는 국제규범과 원칙, 이익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끝없는 제안과 역제안을 내놓는 방식으로 협상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야 한다.
또 우리의 국내 전선과 상대편의 국내 전선의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협상의 강약을 조절하고 타결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협상을 할 때에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상황 뿐 아니라, 미국의 포드, GM, 크라이슬러의 서로 상이한 입장도 다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 업체 간의 입장 차이를 알면 우리가 파고 들어갈 여지가 생긴다.”
협상 ④ 유엔의 북한 인권 협상
―유엔은 대표적인 다자협상 장소이다. 유엔 협상 경험 중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제네바에는 유엔인권이사회가 있다. 연간 10주 이상 회의가 개최되면서 전세계 인권상황에 대한 논의가 벌어진다. 북한인권 문제, 군대위안부 문제도 포함된다. 2013년 주제네바 대사 시절에 유엔인권이사회를 설득해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2013년에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치 결의를 채택했다.
2014년에는 COI가 450쪽의 방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고 심각한 인권침해를 보고하고, 사상·표현·종교의 자유 위반, 구금, 고문, 납치, 정치범수용소 등 9개 유형의 인권유린도 담았다. 호주 대법관 출신인 마이클 커비 위원장이 맹활약했다. 우리는 당시에 북한인권에 대한 강력한 결의를 채택하기 위해 우방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또 관련된 NGO(비정부기구)들과도 정보를 교류하고 협력했다.”
―그렇게 노력해서 성과를 냈지만, 현정부 들어 북한 인권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지 않은가?
“인권은 보편적인 문제인데, 정권이 바뀐다고 인권에 대해 일관성을 잃는 것은 큰 문제이다. 현 정부는 북한 인권에 대해 말이 없다.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때에 눈치만 보고,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놓고도 거의 방치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 내 인권탄압 집단의 이익에 동조하는 셈이다. 북한 인권에 대해 말이 없으면서 어떻게 2차대전 당시 일본의 군대위안부 인권 탄압을 비판할 수 있나?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을 다루지 않는 것은 자승자박이요 자기모순이다.”
협상 ⑤ 평창올림픽 담판
최 전 대사는 2016년부터 2년간 2018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자문대사도 했다. 올림픽 개최 준비 과정에서 외교관이 나서야 하는 협상은 어떤 일일까? 궁금해졌다.
―올림픽 준비에도 외교관의 협상 기술이 필요한가?
“2016년말 한국올림픽조직위원회가 심각한 재정위기에 봉착했다. 인프라 건설 등에 필요한 지출은 증가하고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 속에서 정부의 지원이 한계에 봉착했다. 또 검찰이 정부 요청에 따라 기부한 기업인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업의 기부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추가지원이 없는 경우 심각한 재정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IOC는 1차 지원금을 지불한 것이 마지막이며, 추가지원한 선례가 없다고 거절했다. 정부와 IOC간 맺은 계약에도 ‘적자가 나더라도 한국정부가 모두 보전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IOC가 유치국 정부와 맺은 전형적인 노예계약이다.”
―어떻게 IOC를 설득했나?
“이희범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이 나를 특사로 지명하고 IOC와 담판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2016년 11월 하순 일본 도쿄에서 IOC 간부들과 만났다. 한국 내 탄핵정국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검찰 조사, 국회 주도의 특검, 대통령의 자발적인 하야 등 구체적인 사건 별로 설명하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외교협상 기술로 IOC 설득하다
―IOC의 반응은?
“추가지원은 없으며 적자가 나면 한국이 보충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한국 내 정치 여건의 불가항력으로 동계올림픽 준비 자체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집행위원회에서 한국에 1000만달러(약 121억원)를 추가지원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일은 국제기구를 상대로 수시로 이뤄지는 통상적인 요청 아닌가? 외교 협상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나?
“이희범 위원장도 수차례 요청했으나 IOC 측이 모두 거부했던 사안이다. 나는 단순히 추가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주력했다. 설명을 듣고 IOC 지도부가 올림픽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도록 말이다.
IOC는 추가지원한 선례가 없기 때문에 통상적인 접근은 전혀 통할 가능성이 없었다. IOC가 수퍼갑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한국의 위기가 IOC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외교 협상의 노하우를 사용해 조리있게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한국 외교가 도약하려면
인터뷰가 3시간을 지나면서 시계가 오후 6시를 향해 간다. 최 전 대사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사례로 들며 다자간 혹은 양자간 협상의 기술을 상세히 설명했다. 간간히 일어나 벽에 걸린 백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협상 당시의 상황과 구조를 설명하기도 했다. 국제정치학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세밀한 노하우도 많이 이야기했다.
최 전 대사는 2011년 한·EU FTA 국회 비준동의를 추진하면서 발생한 외교협정문의 국문 번역 오류, 1993년 초 외교부 서기관 시절 있은 한·중·일 산성비 회의, 한국·북한·중국·일본·러시아·몽골이 참석한 두만강개발계획 회의, 유엔 사무국의 회의보고서 왜곡 전말, 군대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에피소드 등 많은 이야기를 했으나 내용이 방대해 여기에 모두 싣기가 어려워 생략한다. 인터뷰를 마무리 짓는 질문으로 한국 외교의 발전 전략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다.
―한국 외교가 발전하려면?
“37년 외교관 생활을 되돌아 보니 내가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발전하고 대외개방하는 시기에 다자외교를 할 기회가 많아서 좋았다. 지난 70년은 미국 주도 하에 안정적 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지금은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신냉전 체제가 들어서고,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국제환경 자체가 과거와 판이하게 바뀌고 있다. 국가안보의 개념이 국방을 넘어 환경·노동·통상·보건 등으로 확산되고, 국제질서도 규범에 기반을 두기 보다는 힘을 기반으로 한 관계로 변질되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은 세계 10위의 국력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다. 우리는 1991년 유엔, 19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도 배출하는 등 다자외교 분야에서 엄청나게 양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질적인 발전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질적인 발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외교는 국가의 생존이 걸린 일이다.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지 않나? 그런데 외교에 대해 국내 정치권의 인식이 매우 천박하다. 정권의 변화에 따라 외교 기조가 너무 일관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려면 외교 인프라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국제 협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므로 국가 지도자가 미래에 대해 확고한 비전과 철학을 가져야 일관성 있는 국익 외교를 할 수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이 국내 문제에 매몰되지 말고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글로벌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외교관들의 이론과 실무협상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교육과 투자도 더 늘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 G5 주장, 가능한가?
―성공적인 외교 협상가가 되려면?
“정직해야 하고, 정확해야 하며, 유연해야 하고, 겸허해야 하며, 인내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지식, 신중함, 친화력, 용기를 갖추어야 한다. 위기대응 능력, 정확한 소통 능력, 정무적 판단 능력과 동시에 강한 기술적 법률적 디테일(세부기술)도 지녀야 한다. 상대편 문화에 대한 이해력도 갖고 있어야 유능한 협상가가 될 수 있다. 한국이 국익을 건 전투장에 나가는 협상 담당자에게 이러한 자질을 갖추도록 제대로 훈련을 시키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 전 대사는 한국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면 되도록 많은 다자 및 지역협력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초강대국이 아닌 경우에는 상호이익과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국제규범이 작동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엔과 WTO(세계무역기구) 등 다자체제는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보더라도 이미 가입한 RCEP(아태지역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에 추가하여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도 참여해야 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QUAD(미국·일본·인도·호주 4자 협의체)나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무역협정에도 선제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선 정국이라서 그에게 대선 후보들의 주장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다.
―대선 후보들은 모두 자신의 임기 중에 한국을 미·독·영·프와 함께 하는 G5(주요 5개국) 국가로 만들겠다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G5를 꿈꾸는 것은 자유지만, 자동적으로 실현되기는 어렵다. 경제력은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에 근접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국내 및 국제 정치와 미래에 관한 확고한 비전과 철학을 갖고 정치적 통합과 안정을 실현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한국의 경제력은 현재 세계 10위이지만, 국내 정치와 외교안보의 전략은 훨씬 낮은 수준에서 움직이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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