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은 평소에는 대립하지만 서로 이익이 될 때에는 즉각 손을 잡는다. 지난 2016년 9월 3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 회의에서 악수를 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주석./중국 외교부

국제협상은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전투장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기업들의 생사가 뒤바뀌기도 한다. 이 전투장에서 외교관들은 어떻게 협상을 할까? 승률을 높이는 협상 기술은 존재할까?

코로나 확진자 수가 1만명을 넘어가던 지난 1월 25일, 서울 한국은행 본점 동편에 있는 최석영 외교부 전 경제통상대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가 37년간의 외교관 체험을 녹여 최근 쓴 ‘국제협상 현장노트’를 보기는 했으나 그의 육성을 통해 더 생생하게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서울 남대문로 63 한진빌딩 본관 10층 ‘법무법인 광장(유)’에 도착하자 비서가 작은 변호사 사무실들 사이의 미로를 한참 돌아 회의실로 안내했다. 안내가 없다면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건물 내부 구조가 복잡했다. 오후 2시 30분, 회의실에서 최 전 대사와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최 전 대사는 “선진국과의 협상은 우리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어서 선진국들이 압박하면 견디기 어렵다”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협상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협상 원칙에 충실하고, 협상 상대가 다수일 경우 분리해 협상할 수 있는 기술(divide and conquer)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협상 상대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골라 잡을 수 있게 해야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며 “협상 기간 동안 본부가 협상 수석대표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국내 전선도 안정되어야 국익 확보에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외교 현장에서 보낸 37년

―외교관 생활을 한 지는?

“1979년에 외무고시 13회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서 2015년 말 퇴직했으니 37년간 근무했다. 그 동안 상당한 시간을 여러 나라들이 동시에 협상하는 다자외교 협상으로 보냈다. 두 나라가 하는 양자 협상도 큰 건을 많이 했다. 미국·EU(유럽연합)·중국 등과 양자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했다. 미국과는 쇠고기, 자동차, 쌀, 전문직 비자 쿼터, 개성공단 같은 다양한 문제를 놓고 양자 협상을 했다.”

한국의 외교를 총지휘하고 있는 서울 광화문의 외교부 청사./외교부

―양자 협상과 다자 협상의 차이는?

“양자 협상은 이슈가 단순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하여 폭발성이 강한 경우가 많다. 정치와 여론의 주목을 받기 쉽다. 반면, 다자협상은 이슈가 복잡하고 협상 참여자들도 많아서 협상 규칙을 미리 숙지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또 협상에 시간도 많이 걸려 국내에서 관심을 많이 받지는 못하지만, 국제규범을 만드는 협상이기에 타결되면 국가와 기업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협상은?

“협상 하나 하나가 다 복잡하고 중요한 협상이었다. 굳이 몇가지 분야별로 정리한다면 다자간 환경 협상, 다자간 통상 협상, FTA 양자 협상,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21개 회원국간의 다자 협상, 유엔에서의 협상을 꼽을 수 있다.”

최 전 대사의 협상 경험이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는 듯 했다.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례 중심으로 하나하나씩 물어 보기로 했다.

협상 ① 몬트리올의정서 협상

―먼저 다자간 환경 협상의 사례를 하나 든다면?

“독일 함부르크가 첫 해외 부임지였다. 이후 1988년 가을에 케냐로 갔다. 케냐는 유엔의 동아프리카 본부가 있는 곳이다. UNEP(유엔환경계획)와 UNCHS(유엔인간정주위원회)의 본부가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냉전이 희석되면서 무역자유화와 환경보호에 관한 국제규범을 만드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주케냐대사관 경제참사관 시절인 1991~1992년에 처음으로 중요한 환경외교 협상을 했다. 몬트리올의정서의 이행과 관련된 협상이었다.”

유엔환경계획(UNEP)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는 몬트리올의정서 설명 페이지.

―몬트리올의정서가 뭔가?

“유엔환경계획이 오존층 보호를 위해 오존층 파괴물질의 생산, 소비, 무역을 규제한 환경협정이다. 의정서 자체는 1986년에 채택됐다. 반도체 세정제, 에어콘이나 냉장고의 냉매로 쓰이는 CFC(프레온 가스), 소화기용 소화제로 사용되는 할론이 규제 대상이다. 남극의 오존 구멍을 회복하기 위해 기존 물질의 생산·사용·무역을 규제하고 환경 피해가 덜한 대체 물질을 사용하도록 했다.”

문 닫을 뻔 했던 한국 기업들

―한국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였나?

“협정이 시행되면 한국의 CFC 및 할론의 생산공장이 가동도 못하고 문을 닫아야 됐다. 협상에 참여하지 않는 비당사국과 한국과의 수출입도 금지될 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해 선진국이 환경보호를 명분으로 개도국과의 기술 격차를 영구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몰아부쳤다. 당시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전이라 개도국이었다. 선진국에서는 대체물질도 있고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기술도 있지만, 개도국은 대체물질도 기술도 없기 때문에 말라 죽을 판이라고 했다. 환경협정이 선진국의 기술독점을 정당화하면 안되니, 기술이나 대체물질을 이전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적재산권을 위반하더라도 선진국의 기술을 복제해 쓰겠다고 주장했다. 선진국이 기술을 이전해 줄 리가 없지 않나? 다른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몬트리올의정서는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냉장고와 에어컨 등에 사용되는 프레온 가스와 할론 가스를 다른 물질로 대체하도록 했다. 사진은 2000년대 초반에 생산된 에어컨./일다 사그다예프(위키피디아)

―선진국들의 반응은?

“개도국들의 반발에 선진국들의 태도가 다소 유연해졌다. 개도국의 필수 사용량이 얼마냐고 물어보며 나라마다 그 사용량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필수 사용량을 생산하기 위해 한국의 생산공장 가동을 10년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그 덕에 CFC와 할론 가스 생산 공장을 가진 한국이 생산 시설이 없는 개도국에 10년간 독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망할 뻔했던 한국의 2개 기업이 10년 동안 초호황을 누리며 엄청난 돈을 벌었다.”

―어떤 협상 기술이 성공 비결이라고 보나?

“오존층 파괴의 메카니즘과 파괴 물질에 관한 기술적인 세부사항을 파악해 환경보호와 경제개발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전략이 먹힌 것 같다. 또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보다는 우리 주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정교한 논리를 구성해 같은 입장의 77그룹(개도국 연대) 국가와 함께 상대의 허점을 파고든 전략과 전술이 통했다고 본다.”

협상 ② WTO 정보통신기술(ITA) 협상

―두번째 영역인 다자간 통상 협상의 사례를 든다면?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 시절에 겪은 WTO(세계무역기구) 정보기술협정(ITA)과 관련된 협상을 들 수 있다.”

―정보기술협정(ITA)이 무엇인가?

“200여개 정보통신기술 분야 제품의 수출입 때 관세를 매기지 않는 무관세 무역 실현을 목표로 2012년 5월에 80여개국이 제네바에 있는 WTO 본부에서 ITA-Ⅱ협상을 시작했다. IT 분야의 핵심적인 이익 국가는 미국, EU(유럽연합),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이었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되던 중 2014년 11월 베이징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은 ITA 무관세 리스트에 비밀리에 합의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종적으로 승인했다. 이후 마이클 펑크 주제네바 미국 대사가 나에게 양국 합의 결과를 수용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나는 한국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거절했다.”

WTO(세계무역기구)의 정보기술협정(ITA)은 전세계 정보통신 제품의 무관세 무역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은 2021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삼성의 스마트폰이 지난 1월 20일 서울의 한 삼성모바일스토어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연합뉴스

―한국과 대만 등 다른 나라들을 배제하려고 한 것인가?

“그렇다. 한국과 상의없이 타결을 시도하면서 협상의 내용과 절차상 두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우리나라가 희망하는 품목을 반영하지 않고 타결함으로써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국익이 크게 침해됐다. 둘째, 복수국가 간의 협상은 참여국가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주요국인 한국과 상의없이 합의를 밀어붙이려고 해 정당한 절차를 위반했다.”

미·중·EU가 한국 따돌리자…

―그 후에 어떻게 진행됐나?

“2014년 12월 초 속개된 회의에서 의장인 앙겔로스 팡그라티스 EU 대사는 미국과 중국의 합의를 포함한 수정 양허안을 돌리고 조기 타결을 밀어붙이려 했다. 우리의 관심 품목은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12월 7일에 그는 한국·미국·EU·중국·일본 등 5개국 대사를 소집해 ‘각 국이 핵심 리스트를 제출하면 이를 반영해 의장안을 작성할 예정이며, 내일 전체 회의에 회람하여 최종 합의를 모색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당초 우리가 요구했던 15개 리스트를 축소하여 최종적으로 5개 리스트를 제출하면서 EU 대사에게 ‘이 리스트는 최종 양보안으로 의장안에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최 전 대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9시 회의에 앞서 오전 6시쯤에 의장안이 배포됐는데 한국의 핵심 리스트가 모두 빠져 있었다. EU 의장이 날치기 통과를 시도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평소에 잘 알던 사이였지만, EU 대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내가 수십년 외교관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런 거짓말을 하는 의장은 처음이다. 당장 배포된 의장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ITA 협상에서 탈퇴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다른 회원국들에게도 이메일을 보내 ‘의장의 회의 진행 절차에 심각한 하자가 있어서 한국은 현재의 의장안을 기초로 하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세계무역기구) 본부./위키피디아

―EU 의장과 개인적으로 친했다니, 그가 상당히 긴장했을 것 같다.

“이후 EU 대사와 미국 대사가 사무실로 찾아 왔다. 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했다. ‘너가 어제 추가 제출 품목을 내면 그것을 넣어서 회의에 돌리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런 식으로 처리하니 앞으로 어떻게 너를 믿겠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그 쪽에서는 ‘너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한국 청와대와 외교부를 통해 너를 압박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정년이 6개월 밖에 안남아서 본부 명령이 안 통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 문제는 2014년 12월에 터져서 2015년 6월까지 계속됐다. 위지앤화 주제네바 중국대사는 한국의 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절대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 회의에서 합의한 사항을 바꾸겠다고 본부에 보고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랜 실랑이 끝에 미국과 EU 측은 한국의 주장을 이해했으나, 조기 타결을 위해 한국을 압박하면서도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는 중국에 대한 압박도 병행하게 됐다.”

미국 설득해 중국 압박

―한국이 참석 안한 채 미국과 중국 등이 타결을 선언하면 끝나는 것 아닌가?

“협상의 구조상 꼭 그렇지 않다. WTO 협상의 기본 원칙은 최혜국대우(MFN)이다. A 국가는 B 국가에서 수입을 할 때 적용하는 관세를 C, D 국가에서 수입할 때도 같이 적용해야 한다. ITA 협상에 참여하는 80개국이 전세계 IT 생산 품목의 90% 이상을 차지하는데, 여기서 합의된 사항은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나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IT 강국인 한국이 빠지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등에 수출할 때에는 다른 나라들이 보는 무관세 혜택을 같이 보지만 수입할 때에는 시장 개방에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세를 면제해 줄 필요가 없다. 무임승차하는 셈이어서 한국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WTO(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을 역임한 로베르토 아제베도./WTO

다시 협상 이야기로 돌아갔다.

―결론은 어떻게 났나?

“중국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버텼다. 또 미국·중국·EU는 다각도로 한국 정부와 청와대를 압박하며 양보를 요구했다. 이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6월 방한한 가오 중국 상무장관을 통해 한국의 요청을 호의적으로 고려해 달라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요청했다.

나는 강대국의 정치 게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부단히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면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관세 리스트를 축소하고 그 외 품목의 관세철폐 시한을 앞당기는 다양한 절충안을 제시했다.’

―다른 나라들이 수용했나?

“결국 펑크 미국 대사가 수긍했다. 나는 펑크 대사에게 ‘한국의 이해가 반영된 새 타협안을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에게 갖다 주고 당신이 제안하는 형식으로 회의를 소집하라'고 요구했다. 2015년 7월 16일 오후 6시에 아제베도 사무총장이 한국·미국·중국·EU 대사를 소집해 의장안을 제시하면서’고치지 말고, 받든지 말든지 둘 중에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한국·미국·EU는 받겠다고 했으나 위지앤화 중국 대사는 못받겠다고 했다. 펑크 미국 대사와 위지앤화 중국 대사간에 손가락질까지 등장하는 원색적인 기싸움이 한참 오고갔다.

잠시 뒤 중국 대사가 ‘중국 뿐 아니라 미국과 EU도 좀 더 양보하면 본국에 보고하겠다’고 물러섰다. 다음날 베이징에서 청신호가 오자 EU 대표부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합의문을 채택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한국이 희생양이 됐을 텐데, 8개월 동안 반전이 벌어지면서 중국이 희생양으로 바뀌며 타결이 된 셈이다.”

2015년 7월 17일 8개월간에 걸친 WTO 정보기술협정 개정안을 타결한 뒤 축하하고 있는 협상 당사자들. 왼쪽부터 팡그라티스(Pangrtis) EU대사, 펑크(Punke) 미국대사, 최석영 한국대사, 아제베도(Azevedo) WTO사무총장, 위지앤화 중국대사./최석영

―ITA 협상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국제 협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국가간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은 평소에는 대립하지만, 필요에 따라 서로 협조한다. 이 경우에는 둘 중 하나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미국을 끌여들여 중국을 양보하게 했다. 한국이 실질적인 피해를 본다는 점과, 복수국간 협상의 기본원칙을 지켜야 된다고 미국을 설득했다. 강대국의 세력을 분리해 교섭한 이 전략(divide and conquer)이 효과를 냈다고 본다.

또 법률적이고 기술적인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상참여국의 상호이익을 강조하는 협상 원칙도 주효한 것 같다. 그 덕에 정보통신 품목의 무역자유화에 우리가 희망하는 품목을 더 넣을 수 있었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중국·EU에 수출할 때 내는 관세를 추가로 인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 전 대사와의 대화는 몬트리올의정서와 ITA 협상을 넘어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광우병 사태’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추가 협상 이야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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