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기간 반등세를 보였지만, 연초부터 미국 증시가 흔들리면서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들이 중국, 인도 등 신흥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해외주식형펀드 가운데 중국 펀드 유입액이 미국을 앞질렀고, 홍콩 등 중화권 주식 직접투자 규모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조기 금리 인상 예고 등에 따른 긴축 후폭풍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들은 “지역보다는 기업 실적을 따져보고, 주가가 이미 많이 오른 상태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펀드 유입액에서 미국 앞선 중국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국내·해외를 포함한 주식형공모펀드의 순자산은 82조7143억원으로 전월 말(91조799억원)보다 9.2%(8조3656억원) 줄었다. 주식형펀드의 순자산이 감소한 것은 작년 9월 이후 넉 달 만이다.
하지만 중국 펀드에는 1조원 가까이 자금이 유입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국내 189개 중국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최근 한달간 8958억원 증가했다. 미국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북미주식형펀드는 같은 기간 6929억원이 유입돼 중국펀드보다 증가 규모가 2029억원 적었다. 작년 북미펀드 유입액이 4조8600억원으로 중국펀드(2조3600억원)의 2배가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 들어 자금 흐름이 변한 것이다. 이 외에도 인도, 신흥국 펀드에도 한달간 각각 101억원, 8억원이 추가로 설정됐다.
중국 정부의 기업 규제, 헝다(恒大)사태 등 부동산 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중국과 홍콩 증시를 외면하던 분위기도 조금씩 풀리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의 중국·홍콩 주식 순매수 규모는 1500만달러(약 181억원)였다. 작년 9월 1억달러(약 1206억원) 순매수 후 순매도로 전환한 뒤 넉달 만에 매수로 돌아선 것이다.
◇경기부양 이어가는 중국과 인도
중국, 인도의 경우 최근 금융 완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작년 12월 금융사들이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하는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내린 데 이어 기준금리(대출우대금리·LPR)를 20개월 만에 0.05%포인트 인하했다.
인도 재무부가 지난 1일 공개한 올해 예산 규모는 전년보다 4.6% 늘었고, 당초 예산안과 비교하면 13.3% 많은 39조4490억루피(약 639조4700억원)에 달했다. ‘신흥시장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미국 모비우스캐피탈파트너스의 마크 모비우스 대표는 “지금의 인도는 10년 전 중국 주식시장과 같다”며 “펀드의 절반을 인도와 대만에 묻었다”고 말했다.
올해 연준이 7차례나 기준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의 완화책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지난 달 나스닥지수가 9% 하락하는 동안 홍콩 항셍지수는 1.7% 올랐고, 인도 센섹스지수는 0.4% 하락하는 데 그쳤다.
중국 상해 증시는 작년 외국인이 역대 최대 순매수한 부담에 지난달 7.6% 떨어지긴 했지만 2월 회복 가능성이 점쳐진다. 하나금융투자는 “최근 20년간 중국 증시의 월간 주가 상승 확률은 2월이 77%로 높았다”며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를 앞두고 2월 각 지방정부와 부처별 정책 발표, 은행권 대출 성수기 등이 중첩된 결과다”라고 했다.
◇긴축 충격 신흥국 전이 우려
하지만, 미국의 긴축 여파가 신흥국에 밀어닥칠 위험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 그동안 세계시장에 풀린 달러가 미국으로 되돌아가면서 신흥국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과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충격이 발생한다. 하이투자증권은 “중국 내수 경기가 급격히 침체되는 가운데 최소 성장률(5%) 사수를 위해 동계올림픽 이후 추가 금리 인하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따라 중국으로부터 외국인 투자금이 이탈할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코로나 이전 8%대를 유지했던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작년 12월 시장 예상치(3.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7%를 기록하며 경기 경착륙 경고음도 커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가보다 업종과 실적을 보고 접근하는 것이 수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상, 지정학적 위험 등) 불확실성으로 당분간 (주식 등) 위험 자산의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며 “지역별로 투자하기 보다 가치주는 늘리고 성장주는 줄이는 식의 투자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