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한 건물에 나란히 설치된 4대 금융그룹의 현금인출기. 기사와는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는 발표가 이어지고 있는 은행주가 ‘만년 저평가주’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실적 개선뿐 아니라 은행 실적과 직결되는 금리가 오름세인 데다 배당을 확대하는 등 ‘3박자’가 갖춰져 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은행주 주가지수인 KRX은행은 올 들어 지난 9일까지 8.1% 올랐다. 주요 업종지수 가운데 KRX보험(14.6%) 다음으로 상승률이 컸다. 특히 지난달 28일부터 9일까지 6거래일 연속 지수가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7% 하락한 것과는 정반대 흐름이었다.

개별 종목으로는 우리금융이 연초 후 9일까지 25% 올라 4대 은행 가운데 상승 폭이 가장 컸다. KB금융(16%)·하나금융(14%)·신한지주(10%) 등 다른 은행들도 10% 이상 주가가 뛰었다. 하지만 4대 은행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배에 머물러 여전히 저평가 상태에 놓여있다. 현재 코스피 시장 전체의 PBR은 1배를 웃돈다.

◇금리 상승으로 실적 개선 중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초 후 9일까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KB금융(5040억원)·하나금융(3300억원)·신한지주(2480억원)·우리금융(2290억원)이 순서대로 5~8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외국인은 코스피에서만 1조원 넘게 순매도했지만 은행주는 사들였던 것이다.

은행주 강세의 일등 공신은 실적 개선이다. 4대 은행은 모두 작년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KB금융이 전년보다 25.2% 증가한 4조4100억원의 순익을 거뒀고, 신한지주도 4조19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7% 상승해 ‘4조 클럽’에 가입했다. 하나금융이 10일 공개한 순익은 전년 대비 33.7% 커진 3조5261억원이었고, 우리금융의 순익은 2조5879억원으로 전년보다 98% 급증했다.

올해 금리 인상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은행은 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에서 주로 이익(마진)을 남긴다. 미국 중앙은행은 올해에만 6~7차례 금리를 올릴 거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연내 두 차례 이상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당금 늘리고, 자사주 소각도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 친화 정책도 은행주 상승세에 한몫하고 있다. KB금융은 작년 배당 성향(순이익 중 배당으로 지급하는 금액의 비율)을 26%로 결정해 코로나 확산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주당 배당금은 2940원으로 전년 대비 66% 증가했다. 금융권은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에 금융 당국의 권고로 배당 성향을 20%로 크게 낮췄는데 이를 다시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 것이다.

신한지주 이사회는 9일 작년 기말배당금을 주당 1960원(분기 배당 560원 포함), 배당 성향은 25.2%로 의결했다. 우리금융은 작년 배당금을 역대 최대인 900원(중간 배당 150원 포함)으로, 배당 성향은 코로나 확산 전인 2019년(27%)보다 약간 낮은 25.3%로 결정했다.

이 밖에 KB금융은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자기 회사 주식을 사서 없애버리는 것)을 하기로 했다.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식 수가 줄어들면 나머지 주주들의 주가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신한금융도 자사주 매입·소각을 검토하고 있다.

◇재무 건전성 우려와 규제는 걸림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지급보증은 작년 3분기 말 현재 총 58조8822억원으로 전년 3분기 말보다 15.2% 늘었다. 지급보증은 고객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은행이 이를 대신 상환해주겠다고 약속한 돈을 말한다. 수출 증가세 둔화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지급보증 금액이 늘어나면서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정치권과 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대출 금리 상승과 가산 금리 확대를 규제하려는 것도 부담이다. 정치권에서는 지난달 예대금리차 공시 의무화와 금융위원회 개선 권고 등의 내용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금융 당국이 은행 금리에 대한 감독권을 갖게 되면 은행 수익성에는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대출 금리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은행권은 가산 금리를 쉽게 올릴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나빠질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