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다시 커진 가운데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콩·옥수수·밀 값이 급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곡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나 상장지수증권(ETN) 등의 수익률도 최고 30%를 넘으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21일 미국 MIT 산하 경제복잡성관측소(OEC)에 따르면 세계 밀 수출(2019년 달러 기준)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25.4%)이었다. 옥수수 수출은 두 나라가 14.8%를 담당했다. 양국이 전면전을 벌이면 세계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글로벌 이상기후 영향 등으로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세계 식품 가격에 추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콩 ETN 30% 넘게 올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올 들어 18일까지 콩 선물(先物)은 20.5%, 옥수수는 10.3%, 밀은 3.4% 올랐다. 이들 곡물 가격에 수익률이 연동된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 수익률도 함께 오르고 있다. ’하나 레버리지 콩 선물 ETN(H)’은 같은 기간 35.8% 수익률을 기록했다. ‘KODEX 콩선물(H) ETF’(18.4%), ‘메리츠 레버리지 대표 농산물 선물 ETN(H)’(17.9%), ‘미래에셋 레버리지 옥수수 선물 ETN’(15.1%), ‘대신 밀 선물 ETN(H)’(2%) 등도 모두 가격이 올랐다. 올 들어 코스닥·나스닥이 각각 14.7%, 13.4%씩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농산물 투자 상품 값이 급등하는 것은 세계 최대 영토를 자랑하는 러시아와 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전쟁 가능성 때문이다. 두 나라는 밀과 콩, 옥수수 등 곡물의 주요 수출국이다. 밀 수출은 러시아가 1위, 우크라이나가 5위이고, 옥수수 수출은 우크라이나가 3위, 러시아가 8위다. 콩 역시 우크라이나(6위)·러시아(8위) 모두 10대 수출국에 들어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매월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지난 1월 135.7을 기록했다. 중동 반정부 시위 운동 ‘아랍의 봄’ 사태로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했던 2011년 이후 최고치였다. CNN은 “세계 식량 가격이 11년 만에 최고치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농산물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용평가사 S&P는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밀·옥수수 수출에 차질이 생기면 식량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은행 JP모건은 부셸당 7.9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밀 가격이 2008년 이후 최고인 11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부셸당 6.5달러에 거래되는 옥수수는 8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상반기 농산물 값 계속 상승할 듯
글로벌 이상기후도 곡물 가격 상승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따르면, 2000~2021년은 800년 이후 1200년 만에 가장 건조했던 기간으로 나타났다. 특히 작년 가뭄이 이례적으로 혹독했던 결과, 캘리포니아 등 미 서부 지역에서 대형 산불도 수차례 발생했다.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수온이 평소보다 낮아지는 ‘라니냐’로 인해 동유럽과 함께 또 다른 곡창지대로 꼽히는 남미 지역에 가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대두(콩)·밀·옥수수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전문가들은 라니냐발 곡물 공급 차질이 적어도 4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NH투자증권은 밀의 경우 상반기까지 가격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공급망 차질에 따른 농기계 가격 상승과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따른 비료값 인상도 부담이다. 존디어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 농기계 기업 디어앤컴퍼니는 올해 농기구 가격을 일제히 올린다고 밝혔다. 작년 EU(유럽연합) 내 질소비료 값은 원료인 천연가스 값 급등에 따라 전년보다 263% 급등했다.
반면 세계 최대 곡물 수입국인 중국의 수요 감소 가능성은 곡물 가격 하락 요인으로 거론된다. 미국 글로벌원자재컨설팅은 “중국의 경제 충격으로 중국 중산층 곡물 구매 욕구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