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500 중 자사주 매입 톱 10 기업 비교. /자료=블룸버그

‘수퍼개미’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최근 삼성물산에 주주서한을 보내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표는 삼성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 주식 27만주(0.15%)를 보유하고 있는데, 7일 삼성물산 주가는 10만7500원으로 옛 제일모직과 합병해 처음 거래됐던 2015년 9월 15일(16만3000원)보다도 낮은 상태다.

3월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자사주 매입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의 자금줄 조이기로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서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업들이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할 경우 주가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만으로는 주가를 반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히려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매입하거나 매입 후 소각하지 않고 다시 매물로 내놓는 경우 주가에 악재가 된다. 투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배 증가한 자사주 매입, 보통은 호재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2월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은 자사주를 취득하겠다는 공시를 77건 냈다. 코스피가 29건, 코스닥이 48건이었다. 작년 같은 기간(39건)과 비교했을 때, 자사주 취득 공시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카카오는 지난달 24일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임원 ‘주식 먹튀’ 논란 등으로 주가가 큰 폭 하락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1800억원)·미래에셋증권(1740억원)·KB금융(1500억원) 등도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발표했다.

기업·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은 통상 호재로 해석된다. 기업의 성장성·가치를 잘 아는 내부자가 현재 주가 상태를 저평가된 것으로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은 “2018년 10~11월과 2020년 3월 지수 하락 때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공시가 두드러졌고 그때 주가는 저점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대신증권이 2012년부터 작년 2월까지 9년여간 코스피 자사주 매입 공시 1120건을 분석했더니, 공시 후 250일이 지난 뒤 해당 종목 주가는 평균 12.5% 올랐다. 공시 당일에는 0.8%, 60일 뒤엔 8.6% 상승했다.

◇최근 효과는 반반, 소각 여부 등 따져야

하지만 자사주 매입이 무조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다. 셀트리온은 지난 1월 자사주 1000억원을 사들인 데 이어 5월까지 추가로 800억원어치를 매입하기로 했지만, 주가는 2월 이후 16만원 안팎에서 옆걸음치고 있다. 연초 이후로는 16% 하락했다. 카카오 역시 올 들어 주가가 16% 빠졌다.

반면 지난달 25일 자사주 100만주(1215억원) 매입을 공시한 이마트는 4거래일 연속 총 13%나 올랐다. KB금융과 미래에셋증권은 주가가 각각 연초 후 5%, 1%씩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9%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매입의 의도를 잘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사주 매입에 주주 이익 환원이라는 목적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주주는 자사주 매입으로 지분율을 높여 의결권을 강화할 수 있다. 이렇게 매입한 지분을 우호적인 기업 주식과 맞교환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경우 소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각되지 않은 주식은 오히려 잠재적인 매도 부담 물량으로 남는다.

또 자사주 매입이 과도할 경우 그만큼 기업의 투자 여력은 줄어들고, 결과적으론 기업의 미래 성장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기업 실적은 호전되지 않는데, 자사주를 사들인다고 주가가 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10년간 주주환원율 한국 28%, 미국 89%

한국 기업들의 주주 가치 제고 정책은 미국에 비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KB증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10년간 평균 주주 환원율(순이익에서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쓴 돈이 차지하는 비율)은 28%로, 미국(89%)의 3분의 1에 그쳤다.

미국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은 작년에만 102조원(855억달러)어치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했는데 이 기간 주가는 130달러대에서 170달러대로 올랐다. 2018년 초와 비교하면 4배 넘게 뛰었다. 반면 같은 기간 자사주 매입·소각이 없었던 삼성전자는 주가는 1.5배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