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의 코스피 신규 상장 기념식에 참석한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가 상장 기념 북을 치고 있다. /뉴스1

최근 2년간 뜨겁게 타오른 공모주 시장이 올 들어 급격히 식는 모습이다. 중대어급으로 평가받는 공모주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지난 1월 114조원이라는 기록적 청약 증거금을 모은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의 흥행을 이어갈 후보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국의 금리 인상, 기업 실적 감소 등 증시에 비우호적인 악재가 겹겹이 쌓여있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공모 기대주 상장 속속 연기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신규 상장한 기업은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를 포함해 총 20개다. 같은 기간으로 비교할 때 2020년에는 8개, 기업공개(IPO)가 성황을 이룬 작년에는 19개였다. 올해는 작년보다 1개 늘었기 때문에 양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 1월 상장한 LG엔솔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모 규모 600억원 이하의 소형 코스닥 상장 기업이었다. 차기 대어로 기대를 모은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1월 수요 예측(기관 투자자들에게 청약 희망 수량과 가격을 묻는 절차) 실패로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연이어 나올 것으로 전망된 기업들마저 일정이 미뤄지고 있다. 올 들어 한국의약연구소 등 4곳이 상장예비심사 청구를 철회했다.

/그래픽=김성규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코스닥 시장 상장사(10개)의 평균 수요 예측 경쟁률은 818대1이었다. 작년(1340대1)보다 낮아졌다. 기관 투자자가 수요 예측에 참여할 때에는 증거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문턱이 낮음에도 수요 예측 경쟁률이 낮다는 것은 공모가가 높거나 종목 경쟁력,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신호다.

올해 상장한 공모주 성적도 좋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3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종목 16개(스팩 제외) 중 절반인 8개의 주가(4일 종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이 16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20.1%로, 작년 신규 상장 기업의 상장 3개월 후 평균 수익률(32%)에 못 미친다.

◇상장예비심사도 3월 말까지는 중단

상장 첫 단추인 거래소 상장예비심사도 지연되는 분위기다. 코스피 시장에 상장할 때는 상장예비심사,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 제출, 수요 예측, 공모 청약 등의 절차를 거친다. 통상 4개월이 걸리는데, 첫 단계인 상장예비심사 결과를 통보받는 데만 최소 45영업일(국내 기업 기준, 외국 기업 65일)이 소요된다.

하지만 SK텔레콤에서 분리돼 투자 전문 지주사로 출범한 SK스퀘어의 자회사 원스토어는 작년 11월 상장예비심사 서류를 제출한 후 66영업일이 지났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현대오일뱅크는 작년 12월 서류 제출 후 56영업일, 교보생명은 49영업일이 각각 지난 상태다. 상반기 상장이 기대됐던 새벽 배송 업체 마켓컬리는 아직 심사 청구를 하지 못해 하반기로 상장이 미뤄지게 됐다.

상장예비심사가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거래소가 이달 말 공시될 작년 실적을 심사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매년 4분기 결산을 다음 해 3월 말까지 공시해야 한다. 따라서 작년 실적을 반영한 상장예비심사 통과 여부는 다음 달 이후에나 정해질 전망이다.

교보생명은 재무적 투자자(FI)인 사모펀드 어피너티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간 소송전이 발목을 잡고 있다. 거래소는 “상장예비심사 연장의 기한은 없다”며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이기 때문에 언제쯤 교보생명 심사가 종료될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LG엔솔의 경우도 제너럴모터스(GM)가 볼트 전기차(EV)를 리콜하기로 한 데 따른 추가 비용 부담 가능성에 심사 기간이 연장돼 작년 하반기에서 올해 2월로 상장 시기가 연기된 바 있다.

◇공부하고 투자하는 옥석 가리기 필요

대어급은 아니지만 알짜 공모주들이 꾸준하게 상장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기대를 완전히 접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37개 종목이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한 상태다. 이달에만 기업 10곳이 상장에 나설 계획이다. 유진투자증권은 “묻지 마식 투자를 하기 이전에 종목이나 산업에 대해 공부하고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악재가 잠잠해지고 증시 분위기가 돌아서면 하반기에는 IPO에 나서는 기업이 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SK증권은 “투자 대기 자금 성격인 투자자 예탁금은 60조원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어 시장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한 편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