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 영통구 삼성전자 본사 모습. /뉴스1

“‘6만 전자’ 되면 바닥이니까 무조건 들어가라더니, 어찌 된 게 계속 이런가요. 이제 진짜 오를까요? 더 기다려야 하나요?”

요즘 증권사 직원들이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 삼성전자 주가가 7만원 근처에서 움직인 지 한 달여에 접어들면서 주식을 열심히 사모으던 개인 투자자들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보일 조짐이다. 한 달 사이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조3890억원, 2조4180억원어치 순매도하는 동안 개인은 3조7310억원을 순매수했다.

‘삼전 개미’들의 조바심을 더욱 돋운 것은 미국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가 최근 일제히 뜀박질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최근 10거래일 사이 엔비디아는 32.3% 폭등했고, 인텔(15.1%), AMD(17.6%), 브로드컴(11.5%), 퀄컴(12.1%) 등 주요 미국 반도체 기업 주가가 일제히 두 자릿수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른 걸까.

그래픽=송윤혜

◇비메모리가 대세인데… “내세울 게 없다”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예상 매출은 76조8600억원, 영업이익은 12조9500억원이다. 증권가 예상대로라면 삼성전자는 1분기 기준 사상 처음 매출 70조원을 넘는다.

실적은 좋지만 투자할 만한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투자 업계에선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업황 차이를 지목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분야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여전히 구조적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가 세계 선두인 메모리 반도체는 디플레이션 우려 속에 2분기에도 D램 가격 반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2분기 전체 D램 평균 가격이 전 분기 대비 0~5%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업계는 D램 가격이 2분기에는 바닥을 다지고 반등할 걸로 봤지만, 전쟁 등 여파로 그 시점이 뒤로 밀린 것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보다 실적이 더 좋은 엔비디아와 TSMC 주가도 많이 내렸다가 이제 반등하는 것”이라며 “강세장이라면 모를까, 약세장이어서 투자자들은 D램 가격 반등을 확인한 뒤에야 삼성전자를 본격적으로 사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GOS(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 이슈도 주가를 누르고 있다. GOS는 게임을 오래 실행할 경우 열이 많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폰 성능을 60% 수준까지 낮추는 시스템인데, 새로 출시한 갤럭시 S22에서 이 시스템을 무조건 실행되도록 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이 문제로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핵심 부품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이 대두되면서 아픈 곳을 건드린 격이 됐다. AP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프로세서로 수요가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

◇2분기에도 지지부진?… “아직 때가 안 왔다”

큰손 투자자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삼성전자에 회의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다.

2019년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가전기기와 컴퓨터의 멀티미디어화 추세로 화면 처리나 전송을 위한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 수요가 더욱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과가 변변치가 않다. 2019년만 해도 세계 시장의 14%를 차지하던 모바일 AP 부문 점유율이 작년 말 기준으로는 4%로 뚝 떨어졌다. 퀄컴 등이 치고 올라오면서 삼성전자를 밀어냈다. 이미지 센서(CIS)도 점유율 45%의 소니와 격차가 더 벌어져 작년 삼성전자 점유율은 26%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는 가격 사이클에 영향을 많이 받고, 주요 비메모리 부문에서는 선두 주자와 격차를 좁히지 못했거나 오히려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 솔직히 내세울 만한 게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