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다가온 가파른 금리 인상 기조에 금융시장이 출렁이면서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발 빠른 이들은 연초부터 투자처를 조정해왔겠지만, 주가가 내릴 때마다 저가매수 기회로 보고 물타기를 계속하던 투자자들이라면 지금 한계 상황을 맞닥뜨렸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돈을 빼서 다른 투자처를 물색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이야말로 ‘옥석 가리기’를 할 때라고 보고 급락한 저평가 주식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골라야 할까.

전문가들은 사실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을 이기기란 정말 쉽지 않다고 말한다. 경험적으로 그랬다. 한 곳에 몰아 투자하는 경우 엄청난 수익을 낼 때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크게 잃을 가능성도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원자재의 경우 2007년, 2010년, 2021년 두 자리대 수익률을 보이며 큰돈을 벌어줬지만, 2012년부터 2015년 사이엔 내리 마이너스 수익률로 전체 자산군 중 가장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분산에 또 분산하는 게 살 길. 이런 때 빛을 발하는 게 바로 EMP(ETF Managed Portfolio) 펀드다.

◇분산만이 살 길…주목 받는 EMP 펀드

이중으로 분산 투자하는 EMP펀드가 금리 급등기 피난처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펀드는 자산의 50% 이상을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투자하는 상품이다. ETF 자체가 이미 특정 국가 증시나 특정 업종을 대상으로 분산 투자하는 상품이다. EMP는 그런 ETF 여럿을 골라 묶은 펀드이기 때문에 분산 효과가 더욱 커지는 게 장점이다. 일명 ‘초(超)분산 펀드’라 불린다.

8일 펀드 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EMP 펀드 규모는 2016년 668억원에서 올 4월 말 기준 1조4084억원으로 6년새 21배 불어났다.

급락장 속에 수익률도 선방하고 있다. 연초 이후 코스피 지수가 13.5%, 코스닥 지수가 14.5% 하락하고 미국 S&P500 지수도 비슷한 낙폭을 보이는 가운데 상위 20개 EMP 펀드는 수익률이 평균 -2.5%로 집계됐다. 최근 1년간 수익률은 평균 플러스 5.6%였다.

올 들어 이달 2일 기준 수익률이 6.7%로 1위에 오른 것은 ‘한국투자EMP글로벌자산배분증권자투자신탁(채권혼합-재간접형)’ 펀드였다. 미국, 유럽, 일본, 신흥국 등 글로벌 시장의 ETF와 주식, 채권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한다. 2위는 ‘키움불리오글로벌멀티에셋EMP증권투자신탁(UH·혼합-재간접형)’ 펀드(수익률 3.6%)였다. 이 펀드는 최근 미국 재무부 물가연동채권(TIPS) 인덱스를 추종하는 채권형 펀드인 ‘Schwab US TIPS’ ETF를 공격적으로 편입해 수익률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급격한 인플레이션 속에 TIPS 수익률은 최근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까지 올라섰다.

◇하락장엔 덜 떨어져…6년새 21배 성장

국내 EMP펀드 중 순자산이 약 6000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큰 ‘IBK플레인바닐라EMP증권투자신탁(혼합-재간접형)’ 펀드는 연초 이후 -4%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2019년 초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은 40%대로 선방하고 있지만, 최근 미국 시장이 급락한 영향을 받았다. 다만 시장 주요지수보다는 하락이 덜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의 ‘삼성밀당다람쥐글로벌EMP(주식혼합-재간접형)’는 기본 6대 4인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시장 상황에 따라 ‘밀고 당겨’ 조절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최근 1년 수익률 6.9%, 연초 이후 수익률 -5.1%를 기록 중이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지금 같은 글로벌 경기 수축 국면에서는 주식 비중을 축소해 운용하고, 이런 국면에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이는 ETF로 포트폴리오를 꾸리는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 금융사들은 EMP 자산 배분을 AI(인공지능)에 적극 맡기는 추세다. NH투자증권 측은 “변동성이 높아진 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줄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산 비중을 늘리는 이른바 ‘리스크 버지팅(Risk Budgeting·위험 사전배분)’에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나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기능을 펀드 자산배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MP 펀드

자산의 50% 이상을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상품. ETF는 특정 국가 증시나 특정 업종을 대상으로 분산 투자하는 펀드인데, EMP 펀드는 다시 여러 ETF에 분산 투자를 하는 것이 특징이라 ‘초(超)분산 펀드’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