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②편에서 계속
김현희 서울옥션 수석경매사와의 대화는 미술품 투자 전략을 넘어 국내외 미술계의 흐름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다.
주류가 된 MZ세대
—최근 미술품 경매 트렌드에 대해 물어보자. 일반인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나?
“예전에 비해 대중의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특히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에 신규 고객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 신규 고객 가운데 1980년대 이후 출생한 MZ세대들이 급증하면서 평균 연령이 매우 낮아졌다. 그러다 보니 미술시장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작품의 판매량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고, MZ세대들이 컬렉터(작품수집가)로 진입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작품이 많이 팔리고 있다. 장년 세대가 선호하는 작품과 다른 다양한 작품이 경매에 등장하고 있다.”
—MZ세대 컬렉터들의 특징이 있다면?
“MZ세대는 기본적으로 장년 세대보다 문화예술을 쉽게 향유한다.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로 한국에 앉아서도 해외 미술 전시를 VR(가상현실)로 본다. 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면 인스타그램으로 작품 사진을 공유하고 작가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 대화하기도 한다.
그들은 또 사진을 많이 찍는데, 자기가 보유한 작품을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 공유한다. 온라인 경매에서 10만~30만원으로도 판화 같은 아트 상품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미술품을 사치품으로 보지 않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미술품이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으나, MZ세대가 등장하면서 미술품 시장의 진입 장벽이 없어졌다.”
—한국만 그런가? 아니면 전세계적으로도 MZ세대 고객이 폭발하고 있나?
“코로나 사태 이후 전세계적으로 MZ세대가 미술품 거래 경향을 많이 바꾸고 있다. MZ세대가 미술품 거래시장의 52%를 차지한다는 해외 통계도 있다. 그 바람에 MZ세대가 원하는 작품이 시장의 주류가 되기 시작했다. 장년층의 선호 작품이 줄고, 젊은층의 작품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
MZ세대가 좋아하는 작가들
—MZ세대가 좋아하는 작품의 작가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국원, 김선우, 문형태 같은 30~40대 작가들이다. 젊은 세대들은 그림 속에 캐릭터화 된 인물이나 동물이 등장하거나, 익살스럽고 경쾌한 이야기가 담겨 있거나, 채색이 화려하고 아이디어가 신선한 작품을 좋아한다.”
—해외 작품에 대한 수요도 많은가?
“많다. 해외 미술 작품 가운데 현재 해외 시장에서 인기 있는 작가에 대한 수요가 많다. 스페인의 에드가 플랜스, 스위스의 우고 론디노네,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 미국의 알렉스 카츠 등이 인기이다.”
—MZ세대가 구입하는 작품의 가격은?
“작품의 크기와 내용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략 1000만~3억원 정도로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산다. 3억원 정도의 고가 미술품은 주로 김창열과 같은 원로작가의 작품이다.”
김 수석이 말을 이어갔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MZ세대는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상업자본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미술품을 사고 파는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운동화를 산 뒤 되팔아서 돈을 버는 것처럼 미술 작품도 사서 되팔아 이익을 남기려고 한다. 아직 가격이 많이 상승하지 않은, 향후에 블루칩(우량주)이 될 만한 작가를 발굴해 작품을 사두는 것이 투자라고 생각한다.
미술 시장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이우환 같은 대표적인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려고 한다.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고 가치가 입증된 작가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작품을 구매하는 것 같다. 미술 작품을 감상용이라고 보는 어른 세대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보나?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미술 시장에서 세대 변화가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미술품 시장의 블루칩
—MZ세대의 등장 외에 최근 경매시장의 다른 특징이 있다면?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많이 상승했다. 예를 들어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우환 작품은 ‘다이얼로그’, ‘점으로부터’ 등 시리즈가 있다. 이우환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므로 원래 수요가 많고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났다. 2020년과 2021년 2년간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그의 작품의 거래 총액이 가장 많았다. 2년간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이우환 외에 현재 인기 있는 작가를 꼽는다면?
“김환기의 작품은 1점당 금액 부문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이 밖에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묘법 시리즈의 박서보, 접합 시리즈의 하종현, 단색화의 윤형근 등의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원로 대가인 이 작가들은 주로 추상미술을 했던 사람들이다. 이처럼 한국 미술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원로 작가들의 작품이 현재 한국 미술시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글로벌 미술업계 트렌드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에 대해서 물어보자. 세계 미술시장의 트렌드는 어떤가?
“작년 한해동안 해외에서는 흑인 예술가와 여성 예술가들이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해외에서도 MZ세대는 기존 예술을 답습하지 않는 것 같다. 새롭고 다양한 작품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래서 그 동안 주류가 아니었던 흑인과 여성 예술가들이 각광받았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상을 흑인 예술가인 시몬 리가 받았다.
기성 예술가 위주로 돌아가던 시장이 바뀌고 있고, 작가의 연령대가 아주 낮아졌다. MZ세대들은 동년배의 젊은 작가 작품을 좋아한다. 작년에 그 세대 변화가 아주 심했고,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 세대 변화가 심했던 이유는?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소통이 확대되면서 미술품 시장에 젊은 세대가 많이 유입됐다. 그 영향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젊은 작가들도 많이 들어오게 됐다.”
미국과 중국의 각축전
—세계 경매 시장은 누가 주도하나?
“경매 업체로는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가 있다. 그런데 업체보다는 국가가 중요하다. 2차 대전 이후 오랫 동안 미국이 미술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가 한동안 중국이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러다가 2019년에 미국이 다시 탈환했는데 2020년과 2021년에는 다시 중국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세계 미술시장의 화두를 꼽는다면?
“‘아시아 밀레니얼’이다. 아시아의 밀레니얼 세대가 세계 미술시장의 최고 큰 손이 됐다. 세계 미술시장의 거래 순위를 보면 1위가 중국, 2위가 미국, 3위가 영국, 4위가 프랑스, 5위가 독일이다. 그 뒤를 이어 6위가 한국이다. 세계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한국이 원래 15위 정도 했는데, 작년에 6위로 점프했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세계 미술품 시장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이 6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거래 규모로 보면 아직 한국의 기여도가 그리 높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물론 미국 중국 영국을 합하면 전체 거래 금액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그래도 세계 6위는 매우 높은 순위이다. 그래서 한국 미술 시장의 잠재성을 보고 해외 화랑들이 한국에 이미 많이 진출했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는 영국에서 시작했고, 미국에서도 열려왔는데, 아시아 중에서는 한국에서 올해 처음으로 열린다. 좋은 작품이 와서 전시가 되고 판매도 될 것이기 때문에 국내 수집가들의 기대가 크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 도시는 홍콩 아닌가?
“그동안 아시아 미술시장은 홍콩이 주도해왔는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약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한국이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프라인 경매 vs 온라인 경매
국내외 미술 시장의 트렌드에 대해 충분히 들었다. 그래서 다시 화제를 인터뷰 주제인 경매와 경매사의 업무로 돌렸다.
—경매 도록을 보면 한 작품의 가격이 예를 들어 2000만~5000만원으로 적혀 있다. 2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하지만 5000만원 정도에 사도 괜찮다는 추천의 의미라고 했는데, 실제로 경매를 시작하면 호가 단위는 어떻게 올라가나?
“호가 상승 단위가 구간별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경매가가 10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면 10만원씩, 1000만원과 2000만원 사이면 50만원씩 호가한다. 경매사가 호가를 제시하면 응찰자는 고객 번호가 새겨진 플라스틱 패들을 들어서 수락의사를 밝힌다.
추가로 더 응찰이 없는 경우 현재 호가되는 금액에 낙찰된다. 응찰자가 전혀 없으면 유찰된다. 유찰된 작품이 다시 경매에 출품되려면 1년 반 정도 기다려야 한다.”
—온라인 경매는 어떻게 진행되나?
“작품 전시회를 먼저 열어 고객들이 실물 작품을 보고 난 뒤에 정해진 날짜에 온라인 경매를 한다. 온라인 경매에도 시작가격이 설정되어 있다. 예컨대 100만원 단위에서 시작한다면 한번 버튼을 누를 때마다 10만원씩 올라간다.
자동응찰의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응찰자가 처음부터 200만원까지 한도를 설정해 놓으면, 다른 응찰자가 현재 금액보다 높은 가격을 써 낼 경우 200만원이 될까지는 자동적으로 10만원씩 높은 가격을 써내게 되어 있다.”
—오프라인 경매와 온라인 경매의 비중은?
“작품의 숫자는 온라인 경매가 많다. 주 1회씩 자주 진행하기 때문이다. 내용이나 가격 측면에서 대중적인 작품은 온라인으로 많이 간다. 온라인 경매에는 판화도 있고, 유명한 작가의 소품도 있고, 신진작가의 작품도 있다.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이다.
작품수는 온라인이 많지만, 주요 작품은 오프라인 경매에 많이 나온다. 낙찰가격 총액 기준으로 볼 때에도 오프라인 경매가 규모가 더 크다. 오프라인은 2~3개월에 한번씩 하고, 시장에서 보기 힘든 작품을 많이 다룬다.”
아나운서에게 경매 진행 시켰더니
—현장에서 경매를 진행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이 있다면?
“공정성이다. 경매라는 것 자체가 위탁자와 구매자의 재산을 중개해 주는 작업이다. 더구나 거래가 현장에서 짧은 시간에 즉각 이뤄지기 때문에 경매가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정하고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경매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경매를 통해 개개 미술품이 가진 예술가치가 시장의 교환가치로 환산되는데, 미술품의 예술가치를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 경매사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경매사가 일반적인 사회자와 다르다는 의미인가?
“경매 작업은 단순한 회의 진행과 다르다. 예를 들어 경매를 진행할 때 경매사는 미술 시장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이 작품이 작가의 작품 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잘 알아야 한다. 적정한 가격도 산정할 줄 알아야 한다.”
—경매 작품의 예술가치를 입찰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나?
“경매가 시작되면 제한된 시간 때문에 그 작품의 특징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호가 시작 전에 이 작품이 갖는 의미나 큰 특징은 경매 참가자들에게 설명해 준다. 예전에 어떤 고객은 작품에 관심이 별로 없다가 경매사의 설명을 듣고 계속 응찰해 낙찰을 받았다.
이 밖에도, 응찰자의 정보 보호를 위해 주저하는 응찰자의 번호를 호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분 더 없습니까?’라고 말하며 그와 눈빛을 마주치는 형태로 그의 의사를 물어보는 식이다. 매우 미묘한 심리전이 경매 현장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다른 사례가 있다면?
“한번은 경매가 시작됐는데 아무도 응찰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손을 드는 시늉을 하면서 응찰자가 없냐고 물어봤더니 그 고객이 결국 손을 들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최근 경매에 부부가 같이 왔는데, 부인이 계속 패들을 올려 가격이 올라가니 남편이 부인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부인이 매우 아쉬워했다. 그 작품을 놓치고 나서 다음 번에 같은 작가의 작품이 또 나왔다. 부인이 남편을 한번 보더니 이번에도 계속 손이 올라가며 다른 사람과 경쟁이 붙었다. 마지막에 부인이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부인이 그 작가의 작품을 간절하게 갖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저하는 부인에게 다시 한번 응찰 할 것이냐고 물어봤다. 결국 부인이 한 번 더 패들을 들어 낙찰을 받았다.”
—경매사의 심리적인 측면은 인공지능이 대신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경매는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의 가치를 빛내는 과정이고, 이를 위해 작품을 원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읽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4차 산업시대에도 경매사는 살아 남을 것이라고 본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간절한 감정을 읽어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점 경매에 평균 1분 20초
—경매가 어느 정도 빠르게 진행되나?
“지난 4월 26일 오후 3시에 경매가 있었다. 그 때 경매사 3명이 번갈아가며 165점을 경매하는데 모두 3시간 30분이 걸렸다. 210분 동안 165점의 경매를 진행했으니 1점당 1분 20초 정도 걸린 셈이다.”
김 수석이 이 대목에서 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경매 상황을 연출했다. 작품 설명과 경매 시작 선언, 호가의 단계적 상승 과정이 매우 빠르고 긴장감 있게 이어졌다. 그의 입이 차분하고 빠른 말을 쏟아내는 순간 그의 눈동자는 좌우로 계속 움직이며 고객들과 눈맞춤을 했다. 한 순간 방심해 그의 말과 눈빛을 놓치면 원하는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속도로 경매가 진행되면 매우 긴장될 것 같은데.
“긴장되지만 즐겁기도 하다. 경매는 생중계라서 돌발상황이 많고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매우 긴장하고 경매장에 들어간다. 경매사 생활한지 17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경매를 할 때마다 떨린다.”
김 수석이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놨다.
“경매는 순간 순간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매우 집중을 해야 한다. 가격이 순식간에 올라가므로 정확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오프라인 경매에서 전화로 참석한 고객과 통화를 하다가 전화가 끊어진다든지 할 때 순간적인 판단과 대응을 잘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때에는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경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경매장 규모를 2배로 확대해 이 건물 2개층을 경매장으로 쓰면서 아래층에는 화면을 놓고 경매를 진행한 적도 있다. 이렇게 고객이 바로 앞에 없는 상황에서는 고객의 의사를 매 순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철저한 사전 연습
—사고를 줄이기 위해 사전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할 것 같다. 경매에 임할 때 특별히 갖는 마음가짐이 있나?
“경매 전에 작품을 실물로 많이 봐서 하나 하나 눈으로 익힌다. 사진과 실제 작품은 그 느낌이나 색감이 다른 경우들도 있다. 전시할 때 실물을 보고 또 보면서 그 작품을 완전히 마음에 익히고, 작품의 시장가격도 조사하며 공부한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이 가격이기 때문에 가격을 틀리면 안 된다. 그래서 실물을 반복적으로 봐서 익히고 경매 연습도 미리 해 본다.
경매는 흐름이 있기 때문에 흐름을 깨면 안 된다. 경매장에서 작품이 등장했을 때 작품이 낯설면 안되고 가격도 사전에 잘 인지하고 있어야 실수가 없다. 매 순간 굉장히 집중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 실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김 수석의 말이 이어졌다.
“화랑에서 이뤄지는 미술품 거래는 공개가 안되지만 경매 회사의 거래 정보는 공개가 되기 때문에 미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출품작을 선정할 때나 추정가를 매길 때, 낙찰가를 만들어 낼 때에 두번, 세번 생각하며 신중하게 처리한다.”
—온라인 경매에서는 경매사가 작품을 설명할 기회나 고객의 심리를 읽을 기회가 없지 않나?
“작품의 내용은 상세 정보란에 있고, 실물은 전시장에서 확인하면 된다. 온라인은 경매사의 역할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고객들과의 경쟁이 이루어지므로 나름의 긴장감과 재미가 있다.”
이중섭 경매서 새 기록을 세우다
—경매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 나는 사건이 있다면?
“2018년에 이중섭의 ‘소’ 작품을 경매한 적이 있다. 20억원에 시작해서 47억원에 낙찰됐다. 이중섭에게 ‘소’가 갖는 의미는 중요하지만, 전해지는 작품이 많지 않다. 당시 한번 응찰할 때마다 1억원씩 갱신하며 역대 최고가를 썼다. 매우 규모가 큰 경매였다.
그 이전에 이중섭 작품의 최고 금액은 2010년의 35억 6000만원이었는데, 36억원이 넘어가는 순간, 새 역사를 쓴다는 생각에 흥분됐다. 47억원에 낙찰됐을 때는 감격스러웠다. 새 기록을 쓰려면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맞아야 하며, 사 줄 수 있는 컬렉터가 있어야 한다. 이 3박자가 맞아서 2010년의 기록을 8년만에 깨고 새로운 기록이 씌여졌다.”
—경매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경매하는 작품이 경합이 많이 붙어서 좋은 금액에 팔릴 때 가슴이 뿌듯하다. 그 작품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경매 산업이 발전하려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나?
“한국의 경매 문화는 매우 선진적이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시장도 좋다. 아시아에서는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가 됐다. 중요한 것은 한국 미술품 경매가 국내 시장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해외 시장으로 뻗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도 2010년에 홍콩 법인을 설립해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1년에 3~4회 홍콩 경매를 열어왔다. 한국의 작가를 해외에 선보이기 위해서이다.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려는 사명감도 있다.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 되면, 우리는 다시 홍콩에 가서 한국 미술을 알리려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경매업체나 화랑들이 많이 노력해야 한다. 해외의 컬렉터들이 한국의 우수한 미술을 많이 접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경매업체나 화랑들의 노력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미술품 투자 3대 요령
시계를 보니 벌써 5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김 수석은 3시간의 인터뷰 동안 도록을 펼쳐 많은 그림들을 보여주며 경매 시장과 국내외 미술품 시장의 트렌드, 미술품 투자의 노하우를 설명했다.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하는 과정에서 눈빛 반응이 재빨랐고, 말의 속도와 강약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자신의 의도를 전달했다. 17년 동안 경매사로 일하며 몸에 밴 속도전과 심리전의 노하우가 얼굴을 가득 덮은 흰 마스크를 뚫고 전해졌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마지막 질문으로 인터뷰의 주제인 미술품 투자 요령을 택했다.
—일반인들이 미술품에 투자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다시 한번 요약해 달라.
“첫째, 목적 설정을 잘해야 한다. 투자 목적이라면 가격을 잘 조사해 보고 구매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소품이라도 내용이 좋아야 하고, 안전하게 투자하려면 활동이 활발하고 인지도가 있는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둘째, 미술품은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곳에서 거래해야 한다. 미술품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책임감 있게 거래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경매회사나 화랑에서 거래하는 것이 좋다.
셋째, 작품을 구매하기 전에 중요한 부분은 확인을 꼭 하기 바란다. 작품의 진위 여부, 상태 등에 대해 꼼꼼히 확인하고 궁금한 부분은 사전에 담당자에게 물어본 후 확인을 거쳐 구매한다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김 수석에게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미술품 재테크에 대해 열심히 물어본 필자가 머쓱하게 이런 답이 돌아왔다.
“미술은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향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변에 좋은 미술관도 많고, 요즘은 특별한 기획 전시도 많이 열리고 있다. 자주 좋은 미술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소장하고 싶어지고, 또 소장해서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끼면 미술품 투자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나를 감동시키는 좋은 미술품은 금액에 구애 받지 않는다. 10만원에 작품을 구매하더라도 소장하며 애착을 갖게 된다면 스스로 미술시장에 와서 다른 작품들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자주 보고 즐기며 그에 더해 투자의 안목까지 키워나가시길 바란다.”
(‘이어 보기’ 아이콘이 작동하지 않으면 검색창에 ‘김현희 경매’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