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낮은 대출금리, 높은 신용대출, 부동산 투자수요 등에 의해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가계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강화 등 우리 정부의 거시건전성 조치를 환영하며 더 강화할 필요가 있고, 부동산 세제효과 지속검토 및 민간부문 주택공급 참여유인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29일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모습. 2022.3.29/뉴스1

회사원 김모(36) 씨는 5년 전 서울 송파구에 있는 18평짜리 아파트를 3억원에 구입했다. 그는 재작년에 이 아파트를 팔고, 서울 성동구의 25평 아파트를 9억원에 샀다. 집을 갈아타면서 빚이 1억3000만원에서 3억6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김 씨의 연소득은 2017년 4600만원에서 지난해 4800만원으로 200만원 늘었지만, 대출금 상환 때문에 생활은 더 팍팍해졌다.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고 남는 돈은 2017년 3800만원에서 지난해 3100만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매달 쓸 수 있는 돈이 320만원에서 260만원으로 줄어든 셈이다. 김 씨는 “기름 값도 크게 오르고 식비도 올랐는데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른다고 하니 걱정”이라며 “대출금을 갚아 빚을 줄이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연소득 4000만~1억원 중산층 다중채무자 25%↑

중산층의 소득이 늘어났지만 가계 빚이 더 늘어나는 바람에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부채를 보유한 소득 상위 21~40%(소득 4분위) 중산층의 처분가능소득은 2017년 5499만원에서 2021년 6029만원으로 530만원(9.6%) 늘어났다. 하지만 같은 기간 원리금 상환액이 1580만원(2017년)에서 2170만원(2021년)으로 590만원(37.3%) 증가하면서, 원리금 상환액을 제외한 연간 소득은 오히려 60만원 줄었다.

2000조원을 향해 가는 한국 가계 부채의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되는 다중채무자도 중산층에서 급격히 늘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NICE평가정보에서 제출받은 다중채무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소득 4000만~7000만원인 다중채무자는 128만7295명으로 4년 전인 2017년(102만4411명)보다 25.7% 급증했다. 연소득 7000만~1억원인 다중채무자도 같은 기간 25.1%(27만7645명→34만7359명) 증가했다. 반면 소득이 4000만원 미만인 다중채무자는 2017년 265만1991명에서 2021년 259만5467명으로 2.1% 감소했다. 저소득층보다는 중산층에서 다중채무자가 집중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다중채무자란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중산층의 빚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려워졌다. 최근 2년간 정부의 코로나 대출 원금 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로 연체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착시효과’가 생겼기 때문이다.

◇변동금리 8년 만에 최대… 금리인상기 이자 부담 ‘눈덩이’

올 들어 금리 인상이 본격화함에 따라 중산층 빚 상환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국내 은행에서 이뤄진 신규 가계대출 중 36.1%는 금리가 연 4% 이상이었다. 작년 12월 말(18.3%)과 비교하면 은행권 고금리 대출 비중이 불과 3개월 만에 거의 두 배가 된 것이다.

코로나 발생으로 저금리 기조가 절정이었던 2020년 8월에는 가계대출의 89%가 금리 3% 미만이었지만, 올해 3월에는 이 비율이 15.7%로 쪼그라들었다. 2년 만에 가계대출 금리의 주류가 ‘2∼3%대’에서 ‘3∼4%대’로 이동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4∼5%대’가 일반적 대출금리 수준으로 굳어질 전망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지금부터는 주식·가상자산 등 자산가격 급등락으로 그 동안 불어난 가계부채의 불안정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 상승 추세가 뚜렷하면 대출자들은 고정금리로 위험을 피해야 하지만, 최근에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3월 기준 은행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율은 77%로, 2014년 3월(78.6%) 이후 최대 수준까지 올랐다. 통상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1%포인트가량 높기 때문에 눈앞의 이자 부담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중산층의 빚 상환 부담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저소득층 위주의 채무 재조정 대책을 중산층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