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진열된 수입산 곡물(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세계 경제가 코로나에서 벗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식량 가격이 치솟고 있다. 여기에 주요국의 식량 수출 금지까지 겹치면서 곡물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인플레 공포로 전 세계 증시가 휘청대는 와중에 국내외 주요 곡물 회사들의 주가와 관련 자산들의 가치가 높아지는 이유다.

30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세계 식량 가격 지수는 158.5로 작년 말(133.7)보다 18.5% 상승했다. 세계 식량 가격 지수는 FAO가 밀, 옥수수, 보리, 쌀 등 24품목에 대한 국제 가격 동향을 조사해 매달 발표하는 지수로, 2014~2016년 평균 가격 수준을 100으로 산정해 산출한다. 세계 식량 가격 지수는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3월(159.7)보다 조금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곡물 가격은 4월에 주춤했지만 5월 이후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정부의 수출 금지 조치 등 시장 개입 확대로 식량 안보 우려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고 밝혔다.

◇19국 식량 수출 금지에 나서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현재까지 일부라도 식품 수출을 금지한 국가는 19국, 수출 허가를 받도록 한 나라는 7국에 달한다. 대부분 수출 제한은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뤄졌다. 세계 2위 밀 생산국이자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인 인도는 13일부터 밀 수출을 금지했고, 설탕 수출도 제한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는 다음 달부터 닭고기 수출을 금지하고,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도 지난달 28일부터 한 달 가까이 팜유 수출을 중단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경우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씨 등의 수출을 금지하거나 허가제로 바꿨다.

아리프 후사인 WFP(유엔세계식량계획) 수석 경제분석가는 “세계 식량 가격은 2020년 중반 이후 상승해 현재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36국에서 식품 물가가 15% 이상 올랐다”고 밝혔다. 이달 22~26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도 식량 위기 문제가 주요 관심사였다.

특히 전쟁 장기화로 밀과 옥수수의 공급 부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밀과 옥수수 가격은 연초 대비 각각 40%, 30% 오른 상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국가가 수출하는 밀과 옥수수는 전 세계에서 비율이 각각 30%, 20%를 차지한다.

심은주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전쟁이 한창이던 4월은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파종 시기였다”며 “올해 봄 우크라이나 생산물과 재배 면적은 30% 이상 감소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외 식량 기업 주가 상승

이 같은 분위기는 곡물 등 식량 관련 국내외 회사들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대두, 옥수수 등 전 세계 주요 곡물 교역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4대 곡물 기업 ABCD(ADM, 벙기, 카길, 루이 드레퓌스) 중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ADM과 벙기의 주가는 올해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국 최대 곡물회사인 ADM(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의 27일(현지 시각) 주가는 88.93달러로 연초(67.89달러) 대비 31% 올랐다. 1902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설립된 ADM은 곡물 저장, 유통, 가공 등을 아우르고 있다.

미국의 벙기 주가 역시 현재 114.72달러로 올해 1월 3일(93.71달러)보다 22.4% 상승한 상태다. 비상장사인 카길도 세계 식량 가격이 치솟으면서 지분 가치가 상승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카길의 주주 제임스 카길과 오스틴 카길, 마리안 리브만 등은 최근 세계 500대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보유한 카길 지분 가치는 53억달러(약 6조5000억원)로 올해 들어서만 20% 늘어난 덕분이다.

국내 식량 관련 기업들도 상승 추세다. CJ제일제당 주가는 30일 39만4500원을 기록하며 올해 최저점(1월 27일·33만2000원)대비 18.8% 올랐고, 4월 중순까지 2000원대에서 머물던 대한제당 주가는 30일 4955원이 돼 두 배 가량으로 치솟았다.

자원이 풍부한 국가에 투자하는 ETF도 주목받고 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아이셰어즈 MSCI 브라질’은 브라질 주요 기업에 투자하는 ETF인데, 27일 35.72달러를 기록했다. 연초(27.36달러) 보다 30.6%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