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들은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인기 없는 종목이다. 주가가 떨어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증시가 강세였던 2년 동안 지주회사 주가는 대부분 소폭으로 오르내리는 데 그쳤다.
SK그룹과 LG그룹 지주사인 SK와 LG 주가가 대표적이다. 2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SK의 주가는 24만9500원으로 2020년 연초(25만8000원)보다 3.3% 떨어진 상태다. 반면 SK가 자회사 SK스퀘어를 통해 지배하는 손자회사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주가가 13% 상승했다. 또 LG전자가 코로나 이후 2년 5개월간 주가가 46.5% 상승하는 동안, 모회사인 LG는 12.8% 오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올 들어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서 ‘미운 오리 새끼’였던 지주회사 주가가 재평가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SG 강조 분위기에 기관 투자금 유입 가능성
지주사가 유독 인기 없는 이유는 덩치가 더 크고 투자 매력이 더 큰 자회사들이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LG가 보유하고 있는 LG화학 지분가치는 12조954억원으로, LG의 시가총액(12조6155억원)과 맞먹는다. 또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지분가치는 84조3584억원에 달하는데, 정작 LG화학 시총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조2376억원에 불과하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에서는 지주사 설립 목적 자체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있었다”며 “그렇다 보니 지주사가 보유한 자회사의 지분가치가 실제 시장가치보다 낮아지는 ‘할인’ 현상이 벌어졌고, 투자자들은 지주사보다 실제 사업을 하는 자회사에 투자를 집중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주회사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우선 기관투자자들이 비재무적 요소를 투자에 반영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부터는 자산 1조원 이상 상장사들이 의무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를 공개해야 하고, 4년 뒤에는 모든 상장사가 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주사는 주주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사업회사인 자회사들보다 평판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ESG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지난해 발표한 ESG 평가에서 국내 지주사 154개사의 등급(평균점수)은 B+(4.12점)로, 시장 평균(B등급, 3.23점)을 웃돌았다.
◇높은 배당성향, 소액주주 보호정책도 수혜
작년 말부터 증시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다는 점도 역설적으로 지주사에는 호재다. 통상 증시 상승기에는 투자자들이 주가가 잘 오르는 종목에 관심을 갖지만, 반대로 약세장에서는 주가가 안정적이면서 배당을 많이 주는 지주사 인기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2019~2021년 주요 지주사의 배당성향은 49.8%로 집계됐다. 배당성향은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 중 어느 정도를 주주들에게 나눠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지주사의 배당성향이 50% 수준이라는 것은 1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면, 이 중 5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분했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35.4%)을 크게 웃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주요 대기업 지주사들은 자회사들로부터 받는 배당수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주사들도 주주가치를 높이는 분위기와 지배주주를 위한 고배당성향으로 시장 평균을 웃도는 배당성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가 기업이 물적분할을 통해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회사 소액주주들에게 미치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점도 지주사 소액주주들에게는 유리한 흐름이다. 기업이 물적분할을 통해 자회사를 상장할 때 소액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거나 비상장 자회사를 상장할 때 공모주를 우선 배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