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시장에서 1조원 이상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보다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업체)이 더 대접을 받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시장의 돈줄이 마르는 상황이라 미래 가치를 보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기업보다는 당장 실적을 낼 수 있는 견실한 업체들이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시장은 상장 예정 기업들에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돈을 보여 달라)’라고 외치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적자 경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니콘들은 공모가를 낮추거나 상장을 미루고 있다.

◇흥행 실패한 ‘유니콘’ 쏘카, 시총 1조원 밑돌아

9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이달 상장을 앞둔 차량 공유 플랫폼 기업 쏘카는 지난 4~5일 기관 수요예측에서 경쟁률이 100대1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받는 스타트업의 공모 경쟁률이 통상 1000대1 이상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흥행에 실패한 셈이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증권사 가운데 상당수가 쏘카가 제시한 공모 희망가 하단(3만4000원)에도 못 미치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쏘카가 제시한 공모가 범위는 3만4000~4만5000원이었는데, 최종 공모가는 이날 2만8000원으로 확정됐다. 공모 물량도 20% 정도 줄이기로 했다. 공모가를 반영한 시가총액은 약 9163억원으로 유니콘 기준인 1조원에 못 미치게 됐다. 원래 목표한 시총(1조2060억~1조5943억원)보다 크게 떨어진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쏘카가 유망 기업인 것은 틀림없지만, 작년 200억원 이상 적자를 내는 등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국내외 금리 인상으로 돈줄이 말라가는 증권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눈앞의 실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 유니콘 업체인 금융 업체 비바리퍼블리카(토스)나 온라인 패션 스토어 무신사 등도 당초 내년쯤 상장을 앞두고 있었지만, 최근 시장 상황이 좋지 않자 내후년 이후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 작아도 실적 단단한 기업들, 상장 후 공모가 2배 넘기도

반면, 쏘카와 같은 날 수요예측을 진행한 정밀 부품 제조사 대성하이텍은 흥행에 성공했다. 대표적인 ‘소부장’ 업체인 이 회사의 경쟁률은 1934.9대1이었다. 쏘카 경쟁률의 19배 이상이다. 국내외 기관투자자 1678곳이 참여했고, 이 중 대부분이 공모가 희망 범위(7400~9000원) 상단 이상 가격을 제시했다. 최종 공모가도 희망 범위 최상단인 9000원으로 확정됐다.

대성하이텍의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1195억원으로 덩치가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117억원으로 내실 있는 기업이라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2차전지 재활용 소재 업체 새빗켐도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 1670.9대1, 일반 투자자 공모 청약 경쟁률 1724.9대1을 기록했다.

최근 상장한 소부장 업체들의 상장 후 주가도 양호하다. 지난달 15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반도체 열처리 장비 제조사인 HPSP는 9일 종가가 6만3200원으로 공모가(2만5000원) 대비 상승률은 153%에 달한다. 지난달 28일 상장한 2차전지 재활용 전문 업체인 성일하이텍 주가도 공모가(5만원)보다 73% 상승한 8만6300원에 달한다. 새빗켐 주가(6만9000원)는 공모가(3만5000원)의 거의 2배가 됐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증시 유동성이 떨어지고 앞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분간 IPO 시장에서는 확실한 실적을 보여주는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