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오면 빈부 차이는 더 벌어지곤 하죠. 지금도 꼭 그런 때입니다. 빚내 투자하던 사람들은 높아진 자금 조달 비용과 가격 변동성까지 감내해야 하는 반면, 자산가들은 고금리 채권에 목돈을 넣고 안전하게 돈을 불리고 있거든요.”

박경희 삼성증권 부사장

국내 1세대 프라이빗뱅커(PB) 출신으로 30여 년간 고액 자산가 자산 관리를 맡아 온 박경희 삼성증권 부사장은 요즘 큰돈이 채권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고채, 한전채 같은 공사채, AA 등급 이상 회사채뿐만 아니라 보험사 후순위 채권, 금융회사가 발행한 신종 자본증권 등이 부자들 쇼핑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인기 채권은 한 번에 50억, 100억원어치씩 사달라는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우량 채권 금리가 4%대 중후반까지 치솟아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는 것이 은행 예금보다 나은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시중 금리가 낮았던 1~2년 전 발행한 표면 금리 1%대 채권도 요즘 인기다. 매매 차익에 대해선 비과세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다, 낮은 발행 금리 덕분에 절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채권은 발행 금리를 기준으로 과세한다). 그는 “주식에서 채권으로, 은행 예금에서 증권사 채권으로 돈이 움직이는 현상은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나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이 망하면 5000만원까지만 예금자 보호가 되기 때문에, 이자까지 따져 5000만원 이하로 맡기곤 한다. 박 부사장은 “이에 비해 한전채는 한도 없이 국가가 지급 보증해주는데, 만기까지 보유할 때 4%대 확정 금리를 주고 있어 비교 우위가 돋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달러를 가진 자산가들은 달러 표시 채권(KP물)이나 미국 국채로도 갈아타고 있다. 미국채 수익률은 작년 말 1% 수준에서 3%대까지, 회사채는 작년 말 1~2%대에서 4~5% 선까지 올랐다.

그럼에도 채권은 ‘하던 사람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아직 깊다. 기관이나 법인들이 매매 차익을 노리는 트레이딩 전략 위주의 투자 자산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박 부사장은 “최근엔 MZ세대가 모바일 앱을 통해 1000원 단위로 신종 자본증권을 사 모으는 등 채권 투자 대중화 시대가 오고 있다”면서 “요즘 같은 시장의 변곡점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사람일수록 돈을 벌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