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코스피가 3000을 넘어서면서 한국 증시가 한 단계 퀀텀 점프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이 퍼졌다. 하지만 올해 전 세계적인 증시 하락 속에서 한국 증시는 유독 다른 나라보다 두드러진 하락세를 기록했다. 곳곳에 퍼져 있는 자본시장의 적들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다시는 한국 증시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개인투자자도 많아지고 있다. 무엇이 한국 증시의 매력을 떨어뜨리는지, ‘자본시장의 적들’ 시리즈를 통해 우리 증권시장이 도약하기 위해 정비할 요인들을 짚어본다.

작년부터 무상증자 단행하는 코스닥 상장사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무상증자는 기업가치에 변화를 주지는 못하지만, 단순히 주가 상승 만을 노리고 '묻지마 투자'를 한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가 커지고 있다. 14일 대전 서구에서 직장인이 주가지수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뉴스1

“코스닥 상장사 노터스 800% 무상증자 단행. (작전) 세력이 들어왔으니 투자하십시오.”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5월 한 주식 관련 유튜브 방송을 보고 노터스 주식에 한 주당 8만원씩 1000만원어치 투자했다. 한 주당 8주씩 공짜로 주식을 나눠준다는 말에 솔깃한 것이다. 하루 만에 15%가량 주가가 오르면서 A씨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주가가 곤두박질치더니 3개월 만에 투자금의 25%가 날아갔다.

단순히 주가 상승만을 노리고 무상증자 기업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의 손해가 커지고 있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무상증자를 결정한 코스닥 상장사는 50곳이다. 이 중 올해 들어 현재까지 주가가 오른 곳은 15곳에 불과했다. 특히 1~4월에 무상증자를 한 20개 기업 중에서는 주가가 오른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무상증자 발표로 단기적으로 주가가 급등할 수는 있어도, 그 효과는 반년도 채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4월 무상증자 공시한 20곳 주가 평균 27% 떨어져

1월부터 4월까지 무상증자를 공시한 20개 기업들의 주가는 올해 들어 평균 27.1%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 하락률(-19.6%)을 밑돈다. 무상증자는 기업이 주식을 새로 발행하되 돈을 받지 않고 기존 주주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지난달 5일 무상증자를 결정한 모아데이타의 경우 7월 19일 기존 주주들에게 1주당 5주씩 나눠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모아데이타 주식은 540만5872주에서 3243만5232주로 6배 늘어났다.

무상증자 공시 직전 1만5150원(7월 4일)이던 이 회사 주가는 10거래일 만에 2만8250원(7월 18일)으로 두 배 가까이로 치솟았다. 주식 수가 6배로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주당 4708원가량이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 회사 주가는 2300원까지 떨어졌다. 무상증자 후 주가가 최고치였던 7월 18일에 이 회사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투자금의 절반가량을 날린 셈이다.

무상증자 후 주가가 단기 급등했다가 중장기적으로 하락하는 것은 실제 기업가치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신규 자금을 끌어들여 기업의 자본력을 강화하는 유상증자와 달리 무상증자는 외부 자금이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재무제표상 숫자만 이동하는 방식이다. 무상증자를 결정하면 기업은 재무제표상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때 회사의 자본 총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박영규 가톨릭대 교수는 “단기적으로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반응은 사라지고 오히려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며 “무상증자만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올해 무상증자 결정한 코스닥 기업 10곳 중 3곳 적자 기업

무상증자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최근 실적이 좋아 쌓인 돈이 많아야 한다. 회사가 넘치는 잉여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기업의 재무 구조가 탄탄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무상증자를 단행한 코스닥 상장사 50곳 중 17곳은 지난해 영업 손실을 본 ‘적자 기업’들이었다. 이 중 12곳은 3년 넘게 손실을 내고 있는 ‘만성 적자 기업’이었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도 최근 ‘무상증자 투자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금감원에 따르면, 무상증자를 결정한 코스닥 상장사는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35곳, 49곳이었다. 작년에는 101곳으로 급증했고, 올해 역시 7월 말까지 50곳에 달한다. 특히 올해는 주당 1주를 초과해 배정하는 무상증자가 많아졌다. 지난해 1주 이하를 나눠준 곳은 전체 기업의 87%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65%로 떨어졌다. 주당 5주 이상 나눠주는 기업 비율은 지난해 1%에서 올해 10%로 급증했다. 그야말로 주식을 남발하고 있는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SNS 등을 통해 ‘무상증자 유망주 추천’ 등과 같은 무상증자 관련 주식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를 부추기는 내용이 확산되고 있다”며 “무상증자만을 근거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