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키움투자자산운용의 러시아 주식 펀드인 ‘키움 러시아 익스플로러 펀드’ 수익률이 하루 만에 20.4% 급등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러시아 펀드도 지난 17일까지 일주일간 수익률이 2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러시아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0%로, 주요 해외 펀드 중 가장 높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각종 서방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러시아 시장에 무슨 ‘호재’라도 생긴 것일까.

사연은 이랬다. 국내 러시아 펀드는 러시아 증시에 상장된 주식을 직접 보유하는 대신, 영국 등 유럽에 상장된 예탁증서(DR·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증서)를 사는 간접 투자를 주로 해왔다. 아무래도 러시아보다는 유럽의 금융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주요 러시아 DR들의 가격이 90~99% 폭락하며 거래 정지됐다. 국내 러시아펀드 수익률도 곤두박질쳤다.

반면, DR과 호환 가능한 러시아 국내 주식(원주)은 전쟁 이후 하락률이 30% 정도다. 통상 DR 가격과 원주 가격은 일치하기 마련이지만, 거래 정지 시점이 달라 괴리가 생겼다. 전쟁 발발 이틀 뒤 러시아 원주 거래는 정지된 반면 DR은 사흘 정도 더 거래됐는데, 이 때 집중적으로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이후 러시아 내국인의 원주 거래가 풀리며 주가가 소폭 상승한 것도 DR과의 가격차를 벌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러시아에서 자국 기업들의 해외 DR 상장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서방 자본의 국내 침투를 막는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러시아 회사들은 기존 DR 투자자들에게 ‘원주로 전환하라’는 공지를 냈고, 최근 국내 운용사들이 원주 전환을 시작한 것이다.

원주 가격이 DR보다 높은 ‘가격 괴리’ 상태에서 전환이 이뤄지자 펀드의 평가 가치가 한번에 상승했다. 예를 들어 키움운용의 노바텍(러시아 가스 회사) DR은 원래 펀드 내 평가 가치가 850만원 정도였는데, 원주로 바뀌자 순식간에 23억원으로 상승했다. 순식간에 270배로 뛴 것이다.

다만 당장 투자자들에게 이익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현재 러시아 시장에서 한국·미국 등 이른바 ‘비우호국’ 외국인의 원주 거래는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러시아 펀드도 환매가 중단된 상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표시된 가치가 상승한 것이지, 실제 투자자 지갑에 들어올 수는 없는 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