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원전주(株) 주가가 뒤늦게 오르기 시작했는데 회사가 찬물을 끼얹네요.”

지난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자마자 국내 원자력 분야 대표 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구 두산중공업)에 투자한 김모(40)씨는 31일 이 회사 주가가 6% 넘게 급락하자 분통을 터뜨렸다. “투자한 지 넉 달여 만에 겨우 본전을 회복하나” 했는데 회사의 대량 지분 매각 발표로 주가가 다시 떨어졌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탈원전 백지화’ 공약에 힘입어 윤 대통령 당선 직후 2만3000원까지 올랐다가 지난 6월에는 1만6000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러다 8월 들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지난 25일에는 2만2000원대를 회복했다. 그런데 이 회사 최대 주주인 두산이 지분 4.5%를 블록딜(대량 매매)로 매각한다고 발표한 여파로 31일에는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전날보다 6.2% 떨어진 2만350원으로 마감했다.

두산은 전날인 30일 장 마감 후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금융시장 변동성에 선제 대응하겠다”며 블록딜 계획을 공시했다. 공교롭게 개인 투자자들은 30일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을 141만3474주 순매수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악재 발표 직전에 대거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인 셈이다.

반면 사모펀드는 같은 날 45만7630주를 순매도하면서 손실을 최소화한 것으로 집계됐다. 외국인도 110만4149주를 순매도했다.

◇ 지주회사 두산 지분 대량 매각 계획 발표… 외국인·사모펀드는 팔고, 개미만 사

두산에너빌리티의 일부 사내 임원도 악재가 발표되기 10여일전에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일에는 이 회사 상무 A씨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 5107주 중 대부분인 5000주를, 19일에는 부사장 B씨가 19일 3300주를 매도했다. 외국인이나 사모펀드 매도량보다는 훨씬 적은 규모지만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블록딜 계획을 미리 알고 매도한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블록딜 계획은 공시 전까지 회사 임직원들도 전혀 몰랐던 내용”이라며 “수년간 구조 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유상증자를 단행하다 보니 임직원들이 보유하고 있던 우리사주도 늘어났고, 주식을 파는 임직원들은 꾸준히 있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블록딜 발표 후 주가가 급락한 두산에너빌리티와 달리 지주사 두산은 31일 나흘만에 반등에 성공하며 전날보다 0.61% 오른 8만28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총매각액은 5722억원 수준인데, 두산은 이번 매각으로 세금을 제외하고 현금 4894억원을 확보할 것으로 추정된다. 처분을 통해 확보한 현금은 재무구조 개선에 활용될 예정인데, 계획대로 쓰인다면 두산 부채 비율은 78%에서 74%로 낮아진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직접적으로 얻는 이익이 없었다”며 “이번 지분 매각은 두산 주주 입장에서는 최고의 호재”라고 밝혔다.